오랜만에 글을 쓴다.
간간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내 글을 다시 읽어본다. 잘 썼다고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한 글도 있긴 하다. 다시 글을 써 봐야 될 텐데 도무지 의욕이 동하지 않는다. 일단 몸도 힘이 안 난다. 브런치에서 내가 좋아하는 독자님들 글도 읽을 힘이 안 난다. 하지만 늘 생각나는 분들이 많다.
갱년기가 시작되나 보다. 여기저기 아프고 전에 없던 증상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체중도 계속 불고 있는데 운동도 하지 않으니 몸이 더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새벽 내 오한에 시달리다 병가와 출근 사이에 고민하다가 출근을 했다.
내가 없으면 교실이 엉망일 텐데 하는 사명감 30프로, 정돈되지 않은 교실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마음 30프로, 하루를 빼버리면 진도가 꼬일 텐데 하는 마음 20프로, 나머지 20프로는 뭔지도 모르겠지만 병가는 낼 수 없었다.
아픈 채로 가면 어차피 수업도 대충일 테고, 28명의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말을 주고받느라 신경이 곤두서면 결국 안 좋은 모습을 보일 거란 걸 알면서도 저런 갈등 속에서도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다. 수업을 하지만 아이들 활동을 둘러볼 힘도 없다. 점심은 받았지만 입맛은 하나도 없다. 내가 엉망이니 아이들도 조용히 할리가 없다. 물 만난 고기들이다. 완수하지 못한 과제들이 3,4개 밀려 있는 아이들은 완수할 마음이 없다. 어느 순간 28명이 과제를 다 냈는지 체크하지 못하고 있는 걸 귀신같이 포착한 아이들은 과제를 완수할 마음이 없다. 학습 속도가 달라서 어쩌다 수업 시간이 남으면 미완성된 과제를 하라고 시간을 주지만 그 시간은 노는 시간일 뿐이다. 좀 더 젊었을 때는 빚쟁이 빚 받듯이 끝까지 과제를 받아내야 직성이 풀렸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에너지가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과제를 그렇게 끝까지 받아내고 꾸중했던 아이들의 인생이 과연 뭐가 달라졌을까 생각도 들어서 28년 차 교사지만 뭐가 제대로 된 교육인지 하나부터 백까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수업을 끝내고 조퇴를 했다. 3시부터 오늘 새벽 6시까지 꼬박 15시간을 잠만 잤다. 잠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길게 자지 않는 사람인데 몸이 알아서 나를 챙겨주고 있다. 이대로 계속 잠이 들면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보지만 28명의 아이들도 생각나고,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큰아들도 생각나고, 긴 출장 이후 식사를 챙기고 있는 남편도 생각나고, 어떻게든 몸을 추슬러야 된다는 의지도 밀려온다.
다음 주에 수업 공개도 앞두고 있는데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는다. 100세 시대라는데 겨우 반을 살았는데 너무 인생 다 산 사람처럼 구는 모습에 힘이 빠진다.
나한테 1년 살이를 맡긴 아이들이 무슨 죄라고. 작년 재작년과 달리 이렇게 힘 빠진 선생으로 살고 있는 건지, 힘 빠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왜 이렇게도 강하게 구는 건지, 이런저런 교실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한테 많이 미안하다.
이제 2달 조금 남았다. 글을 열심히 쓸 때처럼 나를 좀 되돌아보고 마음을 추슬러야 할 때인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