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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설현 Jul 15. 2021

엘리베이터 버튼

나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오늘도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집은 아파트 12층인데 출근을 일찍하다 보니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날도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눌렀고 문이 열리는데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내려가는 동안 핸드폰으로 볼 기사를 읽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고 아직 12층인 것이다. 고장이 났나 생각을 했는데 아쁠싸. 내가 1층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이 누군가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눌렀다면 영락없이 그 층으로 가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집 뿐만 아니라 가끔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간 후 내가 가고자 하는 층 누르는 것을 잊어 버린 후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가 버리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가 라는 짧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안의 버튼은 내가 가고 싶은 목표이자 방향이다.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 안에서 가만히 있으면 둘 중 하나이다.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채 시간이 지나가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누른 버튼에 따라 내 의도와 관계없이 끌려 다니거나. 즉, 정체되거나 휘둘리거나. 


엘리베이터는 보통 내가 가야 하는 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크게 관계는 없지만, 엘리베이터를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내가 가고 싶은 층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는 채 그냥 그 자리에 우두꺼니 서 있는.  내 엘리베이터가 그냥 서 있다는 사실도 잊어 버릴 때도 있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뭔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명확해지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50세를 하늘의 뜻과 도리를 안다는 표현인 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마음이 확고하고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인 30세를 지나, 세상 일에 정신이 빼았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40세의 불혹(不惑)의 시기를 거치면 자연스럽게 지천명(命)에 도달해 나에 대해 잘 알아 흔들림이 없고, 하늘의 뜻도 깨달아 대범한 시각을 갖출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공자가 얘기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립, 불혹, 지천명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나이를 먹으면 각 단계를 저절로 넘게 되는 것이 아닌 각 단계를 목표로 최선을 다해 정진을 해야 각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각 단계를 도달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음도 얘기해 주지 않으셨다. 


막상 내가 命(지천명)이라는 50세가 되었는데, 나는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매일 매순간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남은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버튼을 누리지 않고 우두꺼니 서 있는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인생도 엘리베이터와 같아서 내가 가고 싶은 층을 누르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이 누른 버튼에 따라 끌려 가게 된다. 나는 체육을 하고자 하였으나 부모님의 권유로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고, 회사를 다닐 생각은 없었는데 결국 남들을 따라 입사를 하게 되었고, 딱히 외국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 회사의 지시로 해외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층 버튼을 누르지 않았더니 누군가 그가 원하는 층 버튼을 눌렀고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가게 된 것이었다. 


인생을 엘리베이터에 비유해 보니 하나 더 드는 생각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마음에 있는 것과 그 곳으로 갈 버튼을 누르는 것은 또 다른 얘기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분명 1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나의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손을 내밀어 1층 버튼을 누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12층에 그냥 머물러 있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혹은 직장인으로서 많은 계획을 세우게 된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렇게 세운 계획들이 몇 퍼센트나 실행에 옮겨지는지 계산해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더 놀라게 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실행된 계획 중 끝까지 결과를 보는 계획의 퍼센트 수치이다. 엘리베이터 안의 많은 버튼 중 하나를 골랐고 그 버튼을 누르는 퍼센트가 극히 낮은 것이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 


엘리베이터는 공교롭게도 우리 인생과 같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멈추는 3가지 옵션만 가능하다. 내 인생도 결국 내가 어떤 버튼을 누르냐에 따라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혹은 정체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늘 어떤 버튼을 누르고 싶은 것일까.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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