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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Jun 30. 2023

아이고 나마스떼

새벽 4시 반, 눈이 떠졌다. 잠에서 깼을 때 천장을 보고 곧게 대자로 뻗어 있었다. 달콤하게 잘 잤다는 느낌을 얼마 만에 받았는지 모르겠다. 보통은 옆으로 웅크려서 자는데 자는 도중 왼쪽, 오른쪽으로 자세를 여러 번 바꾼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잠에서 깨기 때문에 수면질이 썩 좋지 않다. 다시 잠들기도 쉽지 않아 수면질을 포기한 지 오래. 옆으로 웅크려 자는 게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몇십년을 그렇게 잔 인간이 잠버릇을 고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여 그냥 이모냥으로 살기로 했다. 그런데 대자로 잔 상태에서 깨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아 그럼 또다시 대자로 자는 연습을 하게 되잖아. 대자로 잠을 청하면 불편해서 잠이 안와 힘들고, 하는 수없이 옆으로 웅크려 자게 되고. 이 무한반복을 또 해야 한단 말인가. 지긋지긋한 희망고문의 굴레.





약 2개월의 공백을 끝내고 새 요가원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몸으로 느껴지는 공백은 참 잔인하고 무섭다. 거의 일 년이 걸려 성공한 아사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근처에도 못 가게 되었다. E가 물었다. 요가를 지속하는 원동력이 뭐냐고. 퇴사를 한 이유가 뭐냐, 그 여행지를 택한 이유가 뭐냐, 요가를 계속하는 이유가 뭐냐, 인스타그램을 탈퇴한 이유가 뭐냐 ㅋㅋㅋㅋㅋ 사람들이 내 행동에 대해 이유나 의미를 물을 때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어떤 구구절절 사연이라도 제공해 줘야 사람들이 만족할 것 같은 느낌. 수백 번도 더 얘기했는데 이 인간은 생각을 하고 행동하지는 않기에... 이런 질문에 늘 어버버버 헛소리만 늘어놓다가 상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당신을 명쾌하게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다. 이번 수련은 돈지랄에 의함이라고. 돈지랄을 하십쇼. 그게 지속성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아쉬탕가 마이솔만 수련해 온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어떤 아사나도 견고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점. 각 아사나의 의미와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다섯 호흡도 겨우 유지하는 수준으로 빨리빨리 다음 아사나로 넘어가기 급급했다. 그렇다고 아쉬탕가 마이솔 말고 다른 수업을 들을 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돈지랄로 인해 하타, 얼라인먼트, 아헹가 등의 다양한 수업을 들으면서 왕초보의 자세로 하나하나 접근하는 중이다. 



며칠 전부터 어깨가 아파왔다. 수련을 하면 신체 곳곳에서 전에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 생기는데 이는 한 달쯤 지나면 없어진다. 그리곤 다른 부위에 통증이 또 생긴다. 그리고 없어지고 다른 부위 통증이 생기고를 반복한다. 야매 자체 진단으로 나는 이 통증을 업그레이드의 신호라고 여긴다. 과연 이번 통증은 고질병인 어깨 말림과 가슴 닫힘이 한결 나아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가! 요가 수련을 하면 통증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근육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아니면 부상인지. 후자면 무조건 수련을 중단하고 병원에 가서 전문의한테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통증을 자체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냐고. 느낌만으로도 구별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사람이라면 요가 수련을 할 필요도 없겠지. 우리는, 아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약한 인간 나부랭이니까 이러고 사는 거 아니겠냐고.



그냥 이러고 사는 수밖에.



넘 어렵고 고통스러운 부장가아사나. 부장님이 되면 할 수 있다는 쓰레기 개그를 치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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