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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쏨바디 Feb 01. 2022

연대는 못 갔지만
'기억의 습작'은 건졌던

전람회 '기억의 습작'


전람회 '기억의 습작'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추억으로 기억되는 곡이다. 첫 소개팅 때 ,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던 날, 군대 복무 때, 삶에 지쳐서 넋 놓고 들었던 라디오에서 혹은 운명적인 누군가를 만났을 때 흘러나왔던 BGM.


내가 '기억의 습작'을 처음 접하게 된 건 2006년, 고등학생 때였다.

어느 날 주말, 친한 친구 A와 함께 연세대학교로 대학 탐방을 갔다. 마치 대학 탐방만 가면 그 학교가 내 대학교가 될 거라고 찜하듯이 야심 찬 마음을 가지고 갔었다 ( 그 당시 현실적인 나의 성적은 중요치 않다 )  주말이어서 문이 열려있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 건물 하나가 개방되어 있었다. 패기까지는 없었고, 혹시나 누가 호통칠까 봐 조바심 내면서 들어갔던 빌딩.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들려오는 소리에 이끌려서 친구와 함께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반쯤 열린 문. 그 사이로 밴드 동아리로 보이는 한 그룹이 어떤 노래를 합주로 연주 중이었는데, 그 노래 운율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도대체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반드시 알고 싶고 알아내야만 한다는 강한 욕망이 일어났다. 지금에야 B**S 등  노래 1마디만 들어도 노래 제목을 찾아주는 앱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노래 제목을 찾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멜로디를 잊지 않으려고 흥얼거렸지만, 내 기억력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의 싸이월드의 배경음악을 들었는데 바로 그 노래였다. 드디어 발견했다는 벅차오르는 감정.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전람회'라는 가수를 접하게 되었다.


전람회를 알면서 자연스럽게 김동률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음악은 나의 고등학교와 재수생 시절의 시간을 절대적으로 지배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 특히 우울감이 가득한 재수생이었어서 그런지 노래 한곡이 흘러나오는 5분은 나에게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모든 노래들이 각기 다른 영화 장르 같아서 골라 듣는 맛이 있었다. 과장 한 스푼 보태서 음악을 조금 덜 들었다면 나의 수능 성적이 아주 조금 나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팬사인회를 갔었던 유일한 가수이다, 그는.


그리고 대학 진학 이후,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서인지 어느 순간 그의 음악은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아니면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들었던 음악들이라 알게 모르게 그 음악에 대해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일까.


작년 가을 어느 날, 장마가 연이어 계속되면서 나도 잠시 우울해졌었다. 나는 날씨에는 딱히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 출퇴근길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끄적이다가 더 이상 억지로 신나는 노래를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기억 저편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김동률이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한 때 내 삶의 전부였는데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다시 복습한 그의 노래, 역시 레전드는 레전드다. 노래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천재가 분명해.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곡을 뽑아낼까, 한번 사는 삶 동률옹 (김동률의 애칭)처럼 살아봐야 할텐데! '

 

지금도 그렇고 엄마는 내가 연대에 가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잊을 만하면 꺼냈다. 내가 신촌에 있는 대학교에 가는 것이 본인의 아주 오랜 소망이었다고 하시며. (나중에는 "어머니 당신이 한번 가시죠"라고 나도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자면, 내가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지 못한 것이다. 내 비록 연대는 가지 못했지만 그날의 탐방 덕분에 전람회와 김동률을 알게 되고 이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하였으니 그거면 됐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자아를 뒤흔들만한 그런 노래 하나 있지 않은가? 혹시 없다고 하더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래는 그래도 소싯적 동률 옹의 '찐팬'인 제가 선별해본, 여러분들에게 추천하는 리스트.



삶의 웅장함을 느끼고 싶을 때

*전람회 -졸업

*김동률 -귀향, The concert


사랑과 이별에 관한

*김동률 -이제서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사랑과 이별에 관한(2) -애절함, 고독 주의

*김동률-잔향


달달하고 밝은 햇살에 어울리는

*김동률- 아이처럼,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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