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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17. 2020

왜 남자아이들은 로봇장난감을 고를까?

사람들은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기는 거기 있었고, 본능적으로 호흡을 해왔기 때문이지요. 광고도 마찬가지. 대량생산과 소비를 자극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 확대시켜주는 핵심 도구지만 우리는 그걸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광고인 로베르 궤렝은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질소와 산소 그리고 광고로 이루어져 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잘 느껴지지도 않지만 현대인의 삶을 유지하는데 광고가 그만큼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광고는 제품 정보를 제공하고 브랜드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만듭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주머니를 열게 만드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역할이 그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소비자를 교육하고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하나의 사회문화적 제도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 대여섯 살 꼬마들이 엄마 치마 붙잡고 장난감 사 달라 떼쓰는 장면 가끔 보시지요? 그때 성별에 따라 아이들이 탐내는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 무심코 지나치셨을 겁니다. 대개 여자아이들은 인형이나 소꿉장난감을 고릅니다. 남자아이들은 로봇이나 자동차를 고르기 쉽고요. 아이들이 어디에서 이런 걸 배웠을까요? 누가 가르쳤기에 장난감 선택에서부터 성별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요? 


매사추세츠대학 교수 셧 잘리는, 어린 시절 성적 정체성(gender identity) 형성에 있어 부모의 행동과 매스미디어를 통한 학습이 중추적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광고라고 지적합니다. 광고에 나타난 ‘세상과 삶의 모습’을 통해 여자아이들은 온화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미덕으로, 남자아이들은 활발하고 전투적인 기상을 이상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게지요. 


어떤 의미에서 광고는 전통 시대 무당들의 주술을 대신하는 현대의 마법입니다. 


예를 들어 음료수 자판기에서 코카콜라 사는 청년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캔 뚜껑을 땁니다. '파시싯!’ 탄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상쾌하고 시원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갑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젊은이의 머리 속에는 비키니 미녀들과 어우러져 와이키키 해변을 뛰어다니는 환상이 겹쳐지는 것입니다. 단돈 5백원으로 말이지요.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몽땅 털어 명품 핸드백 구입한 여대생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왜 이런 어이없는 짓을 할까요? 땀 뻘뻘 흘리면서 일했고, 먹고 싶은 것 안 먹었어도 샤넬 핸드백 하나 팔목에 척 걸치는 순간만큼은 마치 최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환상과 착각은 광고가, 정교한 설득을 통해 광고 속에 나타난 가공의 이미지를 현실인 듯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시뮬라크르'가 그것이지요. 어떤 대상을 상대로 복제된 물건이 원본보다 더 현실같은 경우, 이렇게 만들어진 파생현실(hyperreal)이 거꾸로 진짜 현실을 대체해버리는것 말입니다. 


광고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젊고, 현대적이고, 여유롭게 삽니다. 문제는 그 같은 가상현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와는 간극이 크다는 거지요. 유튜브에서 동영상 속에서, 화려한 잡지 화보 속에서 반짝이는 광고의 세계를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면 너머에 숨은,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고통스런 우리네 인생의 진짜 모습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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