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는 암트랙 역 앞에서 차를 내린 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매표구에서 차표 확인을 하고 깜짝 놀란 거지요. 댈러스로 오기 전에 저녁 6시 발 귀환 기차를 분명히 확인했… 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친구가 저를 부르는 별명이 어벙. 그 어리버리 기질이 아메리카에서도 성능을 발휘한 거지요. 기차가 오스틴 도착하는 시간을 댈러스 출발 시간으로 착각했던 겁니다.
뺨이 통통한 역무원 아저씨가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설명합니다. 텍사스 사투리가 자심한 그의 말인즉슨, 댈러스에서 오스틴 가는 기차는 하루에 달랑 한 편 있다는 겁니다. 매일 오전 11시에 출발한답니다. 그러니 기차 떠난 지 6시간도 넘었는데 표 달라는 사람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겠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쿨한 척 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제가 좀 착각했네요 땡큐~" 가뿐히 창구를 물러납니다. 구입한 중고차 몰고 오스틴으로 돌아올 계획이었으니 귀환 열차표 시각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거지요.
그러고는 혼자 투덜거립니다. 이게 세계 최고 교통 선진국이라는 미국 맞아? 대도시 간 기차 편이 하루에 달랑 하나뿐이라니… 어쩌고 저쩌고. 어이없는 실수를 애꿎은 미국 교통부 장관에게 돌리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합니다. 쓸쓸한 제 마음을 비웃듯 텍사스 겨울바람이 다운타운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역사 앞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현재 시각 일요일 오후. 댈러스는 도심공동화 현상의 완벽한 표본입니다. 고층빌딩이 밀집된 다운타운에 개미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 지는 않고 관광객 풍의 할아버지 할머니 몇 분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시는군요. 관람 마차 끄는 흰색 말이 푸르륵 푸륵 콧김 내뿜으며 다가와 말합니다(사진 1). "부산에서 바보는 텍사스에서도 바보군."
굴욕은 굴욕이고 큰 일은 큰 일입니다. 해는 뉘엇뉘엇 기울어지지요, 먼지 가득한 바람은 윙윙 불지요. 천지간에 길 잃은 나그네 심정이 이거다 싶군요. 으슬으슬 뼈를 스미는 추위에 이제 이빨까지 딱딱 부딪힙니다.
벌떡 벤치에서 일어났습니다. 체온을 올리는 데는 걷는 것 이상 없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렇게 무조건 길을 나섭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 기회에 댈러스 구경이나 실컷 하자고. 그러다가 느지막히 숙소 구하자고 작정합니다.
역에서 구한 안내 지도를 벗 삼아 정처 없이 걷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9번째 큰 이 도시에 정말 볼거리가 없네요.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 식당이나 카페를 찾는데 가게들이 모조리 문을 닫았습니다. 열 곳 넘게 잠긴 문을 두들겼는데 단 한군데도 응답이 없습니다. 심지어 간이 편의점까지 꽁꽁 열쇠로 채워놓다니!
2.
배는 고프고 목은 마르고. 문득 고개를 드니 도로 건너편에 건물 하나가 보입니다. 브라운 톤의 벽돌로 지은 7층짜리 빌딩. 웬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깁니다(사진 2). 길을 건너 다가서 봅니다. 맞군요 여기가 바로 거기군요!
두 시간 전 '훌륭한' 딜러 분께서 사무실로 차를 운전하며 지나치다가 우물우물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거든요. "역사의 현장" 어쩌고 저쩌고. 그러니까 여기가 바로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J. F. Kennedy)가 암살된 현장인 겁니다. 이 건물 6층에서 저격범이 총을 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Texas School Book Depository)였는데 지금 보니 댈러스 카운티 청사가 되어 있군요.
때는 바야흐로 1963년 11월 22일. 미국 중부 표준시각 오후 12시 30분. 영부인 재키와 함께 링컨 컨티넨탈 무개차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던 케네디가 이 자리에서 저격을 당한 겁니다. 뒤에서 날아든 첫번째 총알은 빗나가서 길바닥을 때립니다. 두번째 총알은 케네디의 목을 뜷고 앞 자리에 앉은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에게 부상을 입힙니다.
뭔가 이상한 걸 느낀 재키가 목을 부여잡은 케네디를 보는 순간 운명의 3번째 총알이 대통령의 머리를 정면으로 관통합니다. 골수가 튀면서 그가 바닥으로 침몰합니다. 이들이 탄 차는 방탄기능을 갖춘 특수제작 차량. 그런데 자신감 넘치는 젊은 대통령이 퍼레이드를 위해 차 뚜껑을 활짝 열어둔 겁니다.
가까운 곳의 파크랜드 메모리 병원에 도착했을 때 차 바닥은 케네디가 흘린 피로 흥건했습니다. 30분 정도 숨이 붙어있었지만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아래가 저격 직전에 촬영한 장면입니다(사진 3). 몇 초 후의 참극은 상상도 못한 채 각기 다른 방향을 쳐다보며 환히 웃는 케네디와 재키의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세계 최고의 권력의 자리도 이렇게 허망히 끝나다니 인생무상이다 싶습니다.
암살 직후 경찰과 FBI가 교과서 보관소 건물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6층에서 탄피 3개와 암살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소총 하나를 찾아냅니다. 당시 암살 현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있습니다(사진 4). 왼쪽 상단에 저격범이 숨어있던 건물이 보이네요. 미국의 공식 역사는 이 건물 6층에서 총탄이 발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암살 사건 범인으로 알려진 리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는 근처를 도망치다가 붙잡혀 텍사스 경찰서로 이송됩니다. 그런데 체포된 지 이틀 만에 경찰서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다가 마피아 연루 혐의가 있는 나이트클럽 경영자 잭 루비에게 권총을 맞아 죽습니다(사진 5, 6). 이를 통해 암살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게 되지요.
리 오스왈드는 우편 주문한 이탈리아제 제식소총 카르카노(carcano) M1938에 일본제 조준경을 부착하여 케네디를 쐈다고 전해집니다(사진 6은 사건 직후 텍사스 경찰이 소총을 공개하는 장면). 노리쇠를 손으로 잡아당겨 격발하는 볼트액션식 소총입니다. 이런 구식 소총에 조준경을 사용해서 2초 만에 3발을 연속 발사했다는 거지요.
007 영화에나 나올 프로페셔널 킬러의 솜씨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냉철한 프로페서녈이 도주행각은 어찌 그리 엉성했던가요.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길은 어떻게 그리도 괴상했을까요. 이 암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터리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딘지 불쌍하게 생긴 이 남자가 당대 미국의 기득권조직들이 꾸민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총탄이 발사되었다는 건물 6층에 암살사건을 테마로 하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이름도 간단명료한 6층 박물관(Sixth Floor Museum). 그 안의 소극장에서 암살 사건의 전후 맥락을 40가지 장면으로 영상화시켜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군요. 건물 옆 모퉁이에 박물관 출입구가 보입니다. 일요일은 오후 5시 15분이 마지막 티켓 판매시간. 입장시간이 채 10분도 안 남았으니 들어가봤지 곧 문을 닫을 기세입니다. 포기하고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그런데 건물 앞 도로 중간에 누가 흰 페인트로 X자를 표시해놓았네요(사진 7). 저게 뭘까 싶어 스마트폰을 검색해보니 바로 저 지점에서 케네디가 총을 맞았다는군요. 60년 가까이 페인트를 대체 몇 번이나 다시 칠했을까요. 영화로, 드라마로, 소설로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케네디의 이름이 그렇게 많이 소환되는데, 왠간하면 근처에 팻말이라도 하나 놓을만 한데 말입니다. 근데 덩그러니 흰색 기호만 표시되어 있군요.
3.
다시 걷습니다. 한 블록을 지나니 붉은 색의 멋진 건물이 보입니다. 텍사스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는 올드레드 뮤지엄(Old red museum). 텍사스 역사를 알 필요가 뭐 있노, 콧방귀 끼며 모퉁이를 돌아가니 이번에는 나무 사이로, 두둥! 한 눈에 주목을 끄는 대담한 디자인의 조형물이 서있는 게 아닙니까. 존 에프 케네디 메모리얼 플라자(J. F. Kennedy memorial Plaza)입니다.
조형물의 구성이 심플합니다. 언뜻 보면 그냥 시멘트로 세운 회색 방벽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막힌 건물이 아니군요. 방벽 사이로 군데군데 출입구가 나 있네요. 틈으로 들어가 보니 중앙에 커다란 흑요석으로 만든 기념석물이 놓여있습니다. 옆면에 케네디의 이름이 새겨져있구요(사진 8, 9).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디자인한 이 추모 기념비(cenotaph)는 케네디 정신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 케네디 정신이 뭔지를 알 리 있나요, 제 눈에는 그저 썰렁한 돌조각일 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뭘 해줄 건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뭘 할 것인지 물어라”는 연설(스피치라이터 테드 소렌센(Ted Sorensen) 작품)은 겨우 떠오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깊은 정치철학은 알 수가 없습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구요.
저한테 케네디는 전형적 아메리카 기득권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미국 대통령의 정체성이 그런 거지요. 국내 정치에서는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일부 개혁적 조치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합니다. 그러나 내막을 열고 보면 완전히 다른 면모가 드러나요. 월남전 확전을 적극 주도했구요. 쿠바사태를 통해 소련과의 전쟁을 불사하며 동서 냉전의 최선봉에 섰습니다. 결혼 내내 재키 케네디의 속을 썩인 난봉꾼이었구요. 심지어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함께 섹시 스타 마릴린 몬로의 공동애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케네디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1961년 11월, 쿠테타를 성공시킨 육군 소장 박정희가 거사 반 년 만에 미국을 찾은 겁니다. 생사여탈권 쥔 상전에게 자기가 저지른 불법 행위의 재가를 얻으러 온 겁니다. 백악관에서 케네디를 만난 박정희의 저 표정을 한번 보세요(사진 10).
바짝 올려친 상고머리에 어색한 미소. 도대체 건물 안에서 썬그라스는 왜 썼을까요, 차마 비굴한 눈빛을 보여주기 싫어서였겠지요. 악수를 하며 반란 주모자를 내려다보는 케네디의 표정은 또 어떤가요. 마치 뒷 마을 소작 마름을 대하듯 오만합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1917년생 동갑입니다. 사진이 찍힌 시점 기준으로 마흔 네 살의 연부역강한 나이. 한 사람은 세계 최강국의 선출직 대통령으로, 한 사람은 만주군과 일본군을 거쳐 쿠데타 일으킨 정치군인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2년 후에, 다른 한 사람은 18년 후에 똑같이 총을 맞아 죽습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면서도 남는 건 사진 뿐, 저는 계속 셔터를 눌러댑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듭니다. 석유재벌들이 벌이는 초호화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상업도시 댈러스. 그 거대한 비즈니스 빌딩들 사이로 겨울바람이 휙휙 뛰어다니는 것이 보인 겁니다.
지금 처지가 불현 듯 실감됩니다. 미국 도착한 지 고작 일주일, 집도 절도 차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저는 이제 어쩌란 말입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