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 기증하기
2005년 5월 4일.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종로의 큰길 모퉁이에서 조혈모세포 기증을 등록하였다. 아마도 대학교 친구들 여럿이 같이 등록할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무슨 생각으로 기증에 등록을 했는지 떠올려보면 기증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이라는 것, 나 또한 한 번쯤은 좋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누군가와 유전적으로 일치할 확률이 그렇게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너무나 단순하고도 안일하게 등록을 결정하였다.
등록한 이듬해부터 기증센터에서는 해마다 다이어리를 보내왔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내 기증 등록을 잊지 않게 하려는 듯말이다. 나는 모양도 투박하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 그 다이어리를 매해 받아서 책장에 꽂아놨다 해가 지나면 버리곤 했다. 그리고 20015년 어느 날 조혈모세포기증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나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소아환자가 있다고. 그때의 난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이었다. 갑자기 온 연락에 덜컥 겁부터 집어먹고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우물쭈물 기증의사결정을 며칠 미루다,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핑계를 댔다. 그렇게 기증에 대한 무른 의지로 한 등록은 기증 포기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매해 기증센터에서 보내오는 다이어리 조차 나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한차례 기증을 포기한 사람에게 이런 걸 왜 보내는 걸까, 이렇게 날 벌주려는 걸까, 또다시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난다면 나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2021년 퇴사를 앞둔 어느 날, 기증센터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았다. 나와 유전자형일 일치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사회초년생도 아닌 나는 예전과 다르게 당황하지 않았고, 기증 방법과 절차를 확인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기증을 하기로 결정했다. 기증하는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야 하는 절차들이 몇 번 있었다. 유전자 검사를 하거나, 기증을 위한 건강검진을 받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기증 날을 포함해 2박 3일 입원해야 하는 시간을 자발적으로 내야 한다. 한 생명을 살리는데 며칠의 시간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의 제약이 있는 직장인들에게 아무런 득없이 일주일 가량의 개인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치면 내가 퇴사를 하고 이렇게 기증할 일이 생긴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 기증할 의사가 있는지 신중히 고민했다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기증 등록을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내 경험에 의하면 기증 등록을 하는 것과 나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나 기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기증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꼭 해야겠다는 강한 자발적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방향으로 기울고, 손해가 되는 일은 하기 싫은 것이 사람이니까. 그렇게 따지만 기증이라는 것은 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손해만 얻는 정반대의 일이었다. 어떠한 이유로 기증 포기가 생기더라도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세상엔 이해득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꽤 많이 일어나고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으로 인한 치료는 환자에게 80% 이상의 완치율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는 나의 기증 세포를 받기 전에 평소보다 강도 높은 치료를 받으며 새 세포를 받아들일 몸을 만든다고 한다. 환자도 나의 세포를 받기 위해 자발적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기증이 완료되지 않은 기증 예정자이지만 우리의 두 강력한 의지가 나에게는 좋은 경험으로 그분에겐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