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40%가 본 드라마, 우리 동네에서 촬영했대

<우리 동네 전설 : 예천·안동편7> 예천 용궁면

by 이야기보따리

“첫째야. 드라마 ‘오징어게임’ 알지?”

“에? 당연하지. 우리 반 애들도 다 알아.”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사람들이 본 드라마거든. 그런데, 아빠 어릴 때는 우리나라 사람만 우리나라 드라마를 봤어.”

“그래? 그렇구나.”

“우리나라 드라마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보게 된 게 드라마 ‘가을동화’ 덕분이야. 그 드라마를 우리 동네에서 찍었다.”

“진짜? 어딘데. 갑자기 궁금해지네.”


2000년 11월 7일 막을 내린 이 드라마는 최종회 시청률 42.4%를 기록한다. TV가 있는 가구 중 40% 넘게 이 드라마를 봤다는 뜻이다. 이 드라마 이후 한류 드라마붐이 시작된다. 한류 드라마의 시초인 셈. 겨울연가(2002), 대장금(2003) 같은 드라마들이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류붐을 잇는다.


이 드라마 제목은 ‘가을동화’. 태어나자마자 산부인과에서 바뀐 두 아이. 중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두 아이는 갑자기 지금까지 살던 부모와 헤어진다. 한 아이는 풍요롭고 다정한 엄마 아빠와 오빠, 한 아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홀어머니 게다가 건달 행세를 하는 오빠가 있는 환경이다.


가난한 집에 살던 신애(한채영, 아역 이애정)는 자신이 사실은 부잣집 딸이었음을 알고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한다. 잠깐 신애와 은서(송혜교, 아역 문근영)는 부잣집에서 한 집 생활을 한다. 홀로 작은 가게를 하던, 은서를 낳은 엄마이자 신애를 기른 엄마인 국밥집 주인(김해숙)은 지금껏 은서를 기르던 윤교수(정동환) 부부(아내 선우은숙)와 갈등을 빚는다.


그 갈등 사이에서 은서는 결국 자신을 낳은 국밥집으로 가고, 힘든 생활을 이어간다. 그 사이 윤교수 부부는 신애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고 은서와 오빠 준서(송승헌)는 헤어진다. 오랜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뒤 다시 만난 은서와 준서. 준서에게는 이미 약혼자 신유미(한나나)가 생겼고, 은서 또한 재벌그룹 막내 아들 한태석(원빈)이 마음에 둔 상태다.


어린 시절 오누이로 지내며 서로를 첫 번째로 여기며 끔찍이 아끼던 은서와 준서. 출생 비밀이 밝혀지며 과거 오누이였지만 이젠 남남이다. 어릴 때는 오누이의 사랑이었지만 이젠 법적으론 오누이가 아니다. 또 다른 사랑의 길이 열린 셈이다. 드라마는 은서와 준서의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담으며 전 국민의 눈물샘을 터트렸다.

드라마 1, 2화는 중학교 시절 풋풋했던 시절에 맞는 장소를 보여준다. 그 장소는 경상북도 예천 용궁면. 눈부시게 파란 논 사이를 은서와 준서가 자전거를 타고 질주한다. 이 장면은 이후 과거 회상신에서도 수시로 등장한다.


학교 장면은 용궁초등학교와 용궁중학교에서 촬영했다. 정문에서 하교하는 장면, 은서를 시샘한 신애가 은서의 속치마를 걸어둔 소나무 등 학교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은서와 입장이 바뀐 또 다른 아이 신애와 은서를 낳은 엄마가 살던 가게가 있는 곳은 용궁시장.


포장이 안된 흙바닥에 소와 자전거, 사람이 뒤엉켜 다니는 장터는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시골장이다. 가게에 걸린 달력은 용궁새마을금고여서 용궁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 수 있는 장면. 은서와 준서가 손잡고 건너던 길 중 한 곳은 용궁 제2건널목.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다.


자동차에 치인 은서를 만나기 위해 엄마 아빠가 찾은 병원은 예천권병원. 드라마는 주무대인 용궁면 뿐만 아니라 예천 여기저기를 담았다.


예천은 대한민국 오지 동네로 유명한 경상북도 북부권에서도 특히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이다. 드라마 제작진은 아이들 나이에 맞게 때묻지 않은 풍경을 원했고, 그 곳이 예천 용궁이었다. 변화의 물결을 피해간 동네 모습이 드라마 제작진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40727_092723.jpg 용궁면의 새파란 논
20210302_165825.jpg 용궁역

드라마 ‘가을동화’는 종영되자마자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에 판매된다. 대만에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률 1위를 연이어 기록했다. 극중 태식(원빈)이 한 말인 “얼마면 돼” “사랑? 웃기지마” “너의 죄를 사하노라”는 국민유행어가 됐다.


‘가을동화’는 세상 그 어느 것도 떼놓을 수 없는 순도 100% 사랑을 보여준다. 1, 2화로 드라마의 문을 열고,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를 닫는 장소로 예천군 용궁이 나온 것은 드라마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민 외엔 숨은 그림처럼 드러나지 않던 이곳을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국 관광지 두 곳이 생겨났다.


한 곳은 용궁순대다. 지역엔 단골식당이란 오래된 가게가 있었다. 1960년대초 장사를 시작한 이 가게는 지역 사람들 사이엔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었다. 송혜교 등 출연진과 스태프가 이곳에 들르면서 단골이 됐다.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타고 다른 지역에 알려진다.

20240301_164941.jpg 단골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순대


이후 순대가게 몇 곳이 더 생기면서 용궁순대촌이 만들어진다. 뒤이어 지역에선 용궁을 알릴 수 있는 또다른 맛을 고민한다. 그들은 ‘용궁’이란 지명에 주목했다. 용궁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다. 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건 토끼간. 충성스런 거북이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가지만 기지를 발휘한 토끼가 탈출한다는 이야기다. 용궁순대에 이어 토끼간빵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가을동화’로 인해 뜬 또 한 곳은 회룡포. 물이 한바퀴 휘돌아 지나가는 섬같은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일명 물동이마을(물돌이마을).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이 물동이마을로 유명한 곳들이다.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에 비해 회룡포는 사람들 사이에 생소했다.


‘가을동화’ 영향으로 회룡포도 인지도가 올라갔다. ‘가을동화 배경마을’로 입소문을 탄다. 2005년 8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6호로 지정된다. 같은 달 회룡포에선 모래축제가 열렸다.


‘가을동화’가 방영된지 어느덧 26년이 흘렀다. 참으로 긴 세월이지만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그 때를 이야기한다. 2025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송혜교가 나왔다. 수많은 히트작이 있는 송혜교지만 ‘가을동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송승헌은 여전히 송혜교를 ‘은서’라 부르며 만날 때는 ‘가을동화’ ost를 튼다는 뒷얘기와 함께.

1663165934211-0.jpg 회룡포


가을동화 이후 숱한 한류 드라마들이 탄생했고, 갈수록 영향력은 더 커지는 중이다. 한류 드라마의 시작을 연 장소라곤 하지만 예천은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미지의 장소고 참으로 조용한 곳이다. 예천군 용궁 또한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가을동화 첫 장면처럼.


“둘째야. 지난번 순대 먹었던 곳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나 순대 좋아하잖아.”

“그 동네가 드라마 ‘가을동화’ 찍었던 곳이야.”

“진짜? 다음에 가면 제대로 살펴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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