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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Nov 01. 2023

신뢰

자신과의 관계 #3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한다. 

자신을 믿을 수 없기에 타인의 평가에 더욱 귀 기울이고 타인의 말이라면 철떡 같이 믿어버린다. 

자신에게 가혹한 평가라 할지라도.


자신을 믿기는 어렵지만 타인을 믿는 건 너무도 쉽다. 어쩌면 자신은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 의심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은 특정 믿을만한 사람들에게만 마음을 연다고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뺀 나머지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신경 쓰고 아파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자신을 바꿔보고자 한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나보다 타인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치자. 아주 특별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자신이 마음을 준다고 말이다. 그렇담 그토록 그들에게 온 맘과 온 힘을 다해 충성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들의 말이라면 불길로 뛰어들 정도로 확신해 찬다. 타인의 말 하나, 몸짓 하나에도 상처를 받고 자신의 마음조차 그들 마음대로 하도록 내어준다. 


그렇담 역시 의문이 든다. 그 특정 믿을만한 사람들이란 어떤 기준에 의해 나눠진 걸까? 그토록 자신보다 신뢰하는 그 사람들을 정한 기준 말이다. 막상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적다.  

그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요~"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요~"

라고 말할 뿐이다. 


나는 묻는다. "그들은 늘 당신과 함께 하나요?"


한참을 뜸 들인 후,

"아니요. 하지만 그들은 제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올 거예요"

자신이 없는 목소리다. 


재차 묻는다. "그러면 그들을 언제 불러보셨나요?"


또다시 자신 없게 대답한다.

"그게.... 아직 부른 적은 없어요. 그들이 불편해 할 수도 있고 제가 귀찮게 하면 안 되잖아요."


의문이 든다. 

"당신이 언제든 부르면 달려올 사람이 당신이 부른다고 불편해하고 귀찮아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당신이 말한 그 '언제든지'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곧이어 상대는 시무룩하고 어두운 낯빛으로 침울해진다.


자신이 몸 바쳐 신뢰할만한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위축된다. 자신 앞에서도 타인 앞에서도.

뭐가 그들을 그렇게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일까?


마치 죄를 지은 어린아이인냥 움츠러든 사람들. 그들은 타인에게 조심, 또 조심한다. 미움받을까 봐, 혹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매사 전전긍긍이다. 항상 초조하고 조바심이 난다. 다름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이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자신보다는 타인을 더 많이 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오늘도 자신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힘껏 폐부까지 힘을 짜낸다. 밝은 웃음을 보이며 칭찬받기 위해 애쓰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니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을 한없이 평가절하하는 사람.

자신이 하는 것은 별거 아닌냥 치부해 버리고 타인의 작은 일에는 대단한 일인 양 호들갑을 떨어주는 사람.

오롯이 자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


그들은 자신과는 대화하지 못한다. 타인과만 있어야 존재를 확인받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세계는 텅 비어 있고 타인과 외부로부터만 채울 수 있다고 믿는 허상을 믿는다. 늘 허기지도 비어있다. 혼자는 끔찍하다. 그러면서 같이 있으면 힘들다. 어디서도 쉴 수 없고 편하지 않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 없는 사람들.

마치 입을 막고 있기라도 한 듯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서 흔적조차 없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꺼내보이기라도 하면 모두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이 두렵고 버겁다. 자신의 내면에 끔찍한 것들이 있다고 여긴다.

진짜로 그들은 자신 안에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그들 안에는 상처투성이의 어린아이만 있을 뿐이다. 그 아이는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는 창조성도 갖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름다운 목소리도 갖고 있고 누구보다 다채로운 감정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여기니 안타깝기가 그지없는 일이다. 


그 아이는 소리를 먼저 지르는 것부터 해야 한다. 

처음엔 톤 조절도 안되고 어느 정도로 풀어내야 할지도 모를 수 있다. 일단 쏟아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목소리 톤 조절도 할 수 있는 거고 쏟아내는 말의 양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잘 다듬어지는 말이 나올까?

처음 말 배우는 아기에게 "너의 생각을 얘기해 봐"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얼마나 우수은 일인가.

그러니 처음부터 유려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잘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잘만 가꾸면 멋진 보석이 될만한 원석처럼 자신을 다듬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믿고 자신의 말을 쏟아내고 쏟아낸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을 자신에게 향하기 어렵다면 먼저 타인을 향해 소리치면서 시작하면 된다. 

그 상대가 처음에 말한 믿을만한 특정사람이어도 좋고 아니면 들어주는 사람을 따로 찾아도 좋다. 

다만 당신의 얘기를 끈기 있게 들어줄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당신의 조절되지 않은 톤과 양을 기꺼이 들어주고 받아줄 만한 사람 말이다. 


그것부터 시작하면 어느 순간에는 타인에게 쏟아내는 자신의 목소리가 스스로 들릴 것이다. 그러면 여태껏 자신이 어떤 것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럼 드디어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괴물일지도 모르다고 여겼던 감정을 쏟아내는 순간, 그 쏟아내는 자신의 소리를 듣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자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믿지 않으려 해도 스스로를 믿게 될 것이다. 자신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에는 더 이상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바라지도 않게 될 것이다.  스스로 충분히 인정하는 자신을 보게 될 테니. 


부모를 향해 자신의 몸을 던질 정도의 무한한 신뢰, 그것을 스스로에게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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