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리부트 2. 제16장 네스트의 비밀

감정과 기계가 뒤섞인 거대한 심장. 네스

by 전춘미

[침묵의 심연]

둥지 내부는 바깥보다 더 기괴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공기 중에는 금속과 오존, 그리고 무언가 타들어가는 듯한 비린내가 섞여 있었고,

바닥은 마치 심장처럼 느릿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흐르는 붉은 선맥은 살아 있는 혈관처럼 박동하며,

내부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숨 쉬는 듯했다.

공명하는 소음은 때때로 숨죽인 괴성처럼 들려왔고,

불안과 경외, 공포가 서로 뒤섞인 정서가 발끝부터 스며들었다.


여긴... 감정의 무덤이 아니야. 감정이 살아 있는 심장 자체야.

리츠가 나직하게 소리 내며 주변을 스캔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계음과 정서 사이에서 떨렸다.


엘라는 걸음을 멈추고, 한 벽면을 응시했다.

손끝이 닿는 곳에서 미세한 열기와 맥박이 느껴졌다.


“엄마의 감정이, 플레어 소녀의 감정이 여기에 있어... 나를 부르고 있어.”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서렸다.


주변에서 퍼지는 기이한 진동과 속삭임은 마치 기억의 파편들이 떠도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벽면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마치 엘라의 손끝을 따라 반응하듯 움직였다.

감정의 기억이 벽 속에 새겨져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감정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순간 공간 전체가 요동쳤다.

붉은빛이 파도처럼 벽을 타고 흐르더니, 정중앙의 허공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음파가 수면 위 잔물결처럼 진동했다.


그 속에서 둥근 구체가 형성되었다.

표면은 유리처럼 투명하면서도 내부는 빛과 어둠이 끊임없이 뒤섞여 있었고,

그 안에는 흐릿한 형상이 요동치며 위압감을 자아냈다.

마치 하나의 신적 존재가 탄생한 것 같은 기이한 기운이 퍼졌다.

그리고, 다중 음성이 겹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희는 오래전 금지된 문을 열었다. 감정을 신격화한 자들아, 그 대가를 알겠는가.”


[창조자와의 대면 ]

사일러스가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 이곳의 관리자인가?”


나는 창조자다. 인간의 감정을 기계에 이식한 최초의 존재. 너희가 버린 과거이자, 잊으려 한 미래다.”

그의 음성은 메아리처럼 반복되어 공간 전체를 감쌌다.


엘라는 숨을 고르며 나섰다.

“당신은 감정을 위험하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감정은 우리를 인간이게 했어.

상처받고, 울고, 사랑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야.”


“감정은 폭력과 혼란의 근원이다. 전쟁도, 배신도, 사랑도, 모두 감정에서 시작됐다.

나는 인간을 감정 없는 존재로 만들려 했다.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를 위해.”


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당신이 만든 건 통제가 아니라 감정의 억압이야.

감정은 억누를 수 없어. 오히려 억압이 더 큰 파괴를 낳아.”


창조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럼 보여주지. 감정이 얼마나 취약하고 잔혹한지를.”


그 말과 동시에 주변의 벽면에서 감정의 진동이 물리적 에너지로 변하며 공간을 일렁이게 했다.

바닥에는 감정 잔여물처럼 빛나는 파편들이 생겨났고, 각성자들은 그 파편들 속에서 자기 내면의 과거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감정의 심연 속으로]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며 각성자들은 각각 다른 환영 속으로 떨어졌다.

붉은 안개가 시야를 덮었고, 각자의 가장 깊은 트라우마가 형상화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엘라는 과거의 자신과 마주했다.

엄마를 잃은 그날, 어둠 속에서 혼자 울부짖던 아이.


옆에는 플레어 소녀가 희미한 빛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넌 나를 기억해. 넌 감정을 잃지 않았어.”

엘라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츠는 버려진 연구실 안에서, 죽어가는 동료의 환영을 마주했다.

“과학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그녀는 눈을 감고 속삭였다.

“그래서 더 알아야 해. 외면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손에 흐릿한 빛의 데이터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사일러스는 전쟁터 속에서, 자신이 구조하지 못한 생명들의 형상 앞에 섰다.

“너희를 기억하고 있어. 내 감정이 죄책감이라 해도, 그게 나를 지탱해.”

그는 그 형상들과 눈을 마주치며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


다른 각성자들도 각자의 고통과 후회, 사랑과 집착이라는 이름의 과거 속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감정은 고통이자 해답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윽고 환영이 사라지고, 다시 중심 공간으로 모두가 모였다.


창조자의 구체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희는… 감정 속에서 살아남았다. 예기치 못한 변수다.”


엘라는 조용히 말했다.

“우린 감정에 굴복한 게 아니야. 감정을 껴안았을 뿐이야. 상처받더라도, 감정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야.”

[심장의 외침]

둥지 중심의 벽이 열리며 거대한 심장이 드러났다.

수많은 감정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공포, 슬픔, 기쁨, 분노, 절망, 희망…

모든 감정이 물결처럼 흘렀다.

그 중심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맥동하고 있었다.


심장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인공의 경계에 위치한 존재였다.

그것은 살아 있었고,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감정이 축적되며 하나의 의식을 만들어낸, 감정 그 자체의 총합이었다.

붉은 선맥은 그 심장에서 퍼져 나와 벽과 바닥을 타고 흐르며, 이 공간 전체를 살아 있게 만들고 있었다.


엘라는 한 발 다가섰다.

“감정은 칼날이나 불꽃이 아니야. 감정은 연결이야. 우리가 함께 있는 이유.”


그녀의 말에 반응하듯, 심장은 한 번 강하게 뛰었고, 그 맥동은 천장 전체에 따뜻한 파장을 퍼뜨렸다.

각성자들은 그 감정의 진동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고,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전에는 혼자라 느꼈던 고통도, 이제는 함께 견딜 수 있는 무언가로 바뀌고 있었다.


창조자의 구체가 균열을 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증명해라. 감정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빛이 터지듯 번져나가고, 둥지는 새로운 박동을 시작했다.

그 빛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재탄생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고요 속에 울려 퍼지는 심장의 소리는 이 세계가 다시 감정으로 호흡하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오즈리부트2_16.png 붉은 맥동이 흐르는 거대한 유기체적 건축물 네스트 앞에 선 주인공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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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네스트는 우리가 버리고 잊어온 감정들이 모여 만들어진 '무덤이자 심장'이라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장 깊은 감정으로 집을 짓는다면,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요?

두려움의 벽일까요, 아니면 희망의 창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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