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리부트 2. 제14장 동맹

by 전춘미

[폐허의 대면]

폐허의 지하를 빠져나오자, 거친 황무지의 냄새와 마주했다.

메마른 흙, 스산한 바람, 붉은 석양이 온 대지를 덮고 있었다.


들판 너머로 날아가는 새떼는 불안하게 비틀리는 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며 사라졌고, 땅은 오래된 침묵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OZ의 감시 드론은 아직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한 듯했지만, 그 고요는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엘라는 숨을 고르며 허공에 시선을 뒀다.

류는 감정의 폭주 이후 겨우 버티고 있었고, 하린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또 다른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나타난 이는 회색 외투를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걸음은 바람을 가르며 조용히 다가왔지만, 눈빛은 매섭고 깊었다.

오래된 전쟁의 잔해처럼 손등에는 칼날 같은 흉터가 남아 있었고, 입술 사이로는 굳게 다문 결의가 묻어났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말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디어 만났군. 우리는 네스트를 향하는 길목에서 너희를 기다려왔다."


그의 이름은 『사일러스』.

감정을 억제하지 않은 채 살아남은 외부 각성자 집단의 리더였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감정을 해방한 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증명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의 뒤로 다양한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웃고 있는 자, 눈물을 흘리는 자, 분노에 찬 자.

그들 모두는 억제 없는 감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시에서라면 통제불능으로 분류되었을 존재들.


사일러스의 등장과 동시에, 그를 따라 나온 이들 중 몇몇은 주변을 경계하며 감정의 에너지를 조심스럽게 다듬고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은 실용적이면서도 각자의 정체성과 감정 상태를 반영한 색채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어깨에 자수를 새긴 푸른 망토를 걸쳤고, 또 다른 사람은 팔에 정교한 기계 장치를 장착한 채 주위를 감지하고 있었다.


리츠가 숨죽이며 중얼거렸다.

"이건 위험해. 감정을 이토록 노출시키는 건... 언제든 폭주로 이어질 수 있어."


엘라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우리가 억누른 결과가 지금의 도시야. 이 사람들은,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어."


하린은 혼란스러웠다.

오빠 H-12의 억제 신념과, 눈앞의 사람들.

그녀는 그들의 눈을 보았다. 감정이 얽힌 눈동자, 복잡하고 진실한 표정들.


속으로 질문이 떠올랐다.

‘억제가 진짜 길이었을까? 감정 해방은 자유인가, 아니면 파멸인가?’


[감정의 실험]

사일러스는 천천히 다가오더니 장치를 꺼내 보였다.

투명한 구체 안에는 다층의 수정체가 떠 있었고, 중심에서는 약한 빛이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우리는 이걸 《공명 장치》라 부른다. 감정의 파동을 서로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도구지.

네스트로 향하려면, 우리 모두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야 해."


제로가 단호하게 물었다.

"그 말은 우릴 실험체 삼겠다는 건가?"


사일러스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선택은 너희 몫이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 OZ는 이미 움직이고 있어. 우리는 함께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동시에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나는 예전에 동료들을 잃었다. 감정의 혼란 속에서. 하지만 그날, 마지막까지 그들의 눈에는 포기가 없었어.

나는 그 감정을 믿기로 했다. 이 장치는 그 유산이야."


엘라는 동료들을 돌아봤다.

류는 고개를 끄덕였고, 리츠는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장비를 정비했다.


하린은 여전히 갈등했지만,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하려는 건 단순한 연합이 아니야. 감정을 다루는 방식, 우리가 될 세상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야.

나는 균형을 택할 거야."


[공명의 시작]

각성자들과 엘라, 하린, 리츠, 류, 제로 일행은 원형을 이루고 장치를 중심에 두었다.

바닥은 미세하게 떨렸고, 장치의 빛은 심장 박동처럼 번쩍였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고, 감정이 공명하며 색을 입었다.


분노는 붉은 불꽃으로, 슬픔은 짙은 청색의 물결로, 희망은 황금빛 광채로 변화했다.

사랑은 따뜻한 분홍빛으로, 공포는 검푸른 안개로, 갈망은 은백색 불꽃으로 반응했다.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닌, 물리적 현상처럼 장치 주위를 휘돌았다.

빛과 열, 냄새와 진동이 혼합되어 공간 자체가 하나의 감정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엘라는 플레어 소녀의 불꽃과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렸고, 그녀의 감정은 따스한 빛으로 공간을 감쌌다.

류는 불안과 죄책감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걸음 나아갔고, 리츠는 공포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감정을 열었다.


하린은 손을 꽉 쥐고 속삭였다.

”이 힘이 혼돈이 아니라 선택의 증거가 되기를..."


감정들이 서로 충돌했다.

분노가 희망을 덮으려 하자, 슬픔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갈망은 분노를 자극했지만, 사랑의 빛이 그것을 감쌌다.


격렬한 공명의 마찰 속에서 모두가 잠식당할 뻔했지만, 그 중심에서 다시금 따스한 파동이 피어났다.

감정은 혼돈이 아니라 언어가 되었고, 연결이 되었다.


갑작스레 장치가 강렬한 섬광을 발하며 하늘을 찢는 듯한 굉음을 토했다.

황무지는 빛으로 물들었고, 멀리서 드론의 감시 신호가 일제히 끊어졌다.

그러나 장치는 곧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경고음을 냈다.


사일러스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이 힘은 아직 불완전하다. 하지만 분명해.

우리의 감정은 결합될 수 있고, 그것이 OZ를 흔들 열쇠가 될 거란 걸."


엘라는 동료들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 힘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 위험이야말로, 억제된 세상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균형이었다.


하린은 속으로 되뇌었다.

‘감정은 무기가 아니다. 감정은 선택의 근거이고, 미래의 뿌리야.’


그리고, 구름 사이로 붉은빛이 깜빡이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하늘의 일부가 갈라지듯 열렸다.

드론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고, 하늘은 기이한 붉은 기운에 물들기 시작했다.


OZ는 실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외부 각성자 집단을, 감정의 진화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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