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리부트 2. 제12장 기억의 문

by 전춘미

§감정의 진입§

금지구역의 입구를 가까스로 통과한 순간, 바람결에 스며드는 공기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밀려들었다.

기압이 묘하게 변했고, 호흡은 희미한 안개처럼 폐에 스며들었다.

주변의 소리마저 기묘하게 왜곡되었고, 감각은 마치 유리관 안에 들어선 듯 둔탁해졌다.


발밑 지면은 금속성 질감이 아닌, 살아 있는 생물의 피부처럼 온기를 품은 채, 맥동하는 느낌을 주었다.

진동은 일정하지 않았고, 마치 감정의 심장박동처럼 고조와 이완을 반복했다.


엘라는 멈춰 섰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감정이 억제되지 않는 곳,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장소였다.


억압된 기억들이 다시 떠오를 준비를 마친 듯, 공간 전체가 기대와 불안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입자들이 점점 밝아지며, 흩날리는 불빛으로 엘라의 시야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뎠다.

마치 과거의 조각들이 이끄는 듯, 발길은 자연스럽게 방향을 잡았다.

벽면은 부식된 금속이었지만, 손끝이 닿자 그 차가움은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누군가의 체온, 오래된 연결의 잔상.

그녀는 무의식 중에 그 벽위로 손을 문질렀다.

마치 안갯속의 희미한 환영을 확인하듯.


§기억의 파열§

그 순간, 시야가 일그러지며 눈앞에 낯선 공간이 열렸다.

빛의 색조가 시시각각 변하며 음향처럼 울리는 감각이 몰려왔다.


엘라는 과거의 기억에 휩싸였다.

회색 벽, 푸른 조명, 무표정한 얼굴들. 그러나 그 가운데 유일하게 온기를 품은 존재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이전과는 달리 실루엣으로 존재했지만, 그녀가 웃는 방식, 고개를 기울이는 각도,

손을 내미는 부드러움은 너무도 선명했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꿈처럼 흐릿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명확했다.


“엘라,” 익숙하면서도 아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의 감정은 무기가 아니라, 네가 존재한다는 증거란다.”


그 말은 플레어 소녀가 죽기 직전 남긴 말과 겹쳐졌다.

느껴. 그게 우리야.’


그 메시지는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정신의 횃불이었다.

엘라의 마음은 그 말들과 함께 과거의 그림자와 현재가 복잡하게 뒤섞였다.


§진동하는 감정의 회로§

엘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나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토록 밀어내려 했던, 그러나 깊이 갈망해 온 정체성의 본질이었다.

그리움과 분노, 상실과 사랑이 뒤섞인 감정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 순간, 주변 풍경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공간은 변해 있었다.

공기 중의 진동이 바뀌고, 벽면의 문양이 미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파동에 응답하며, 회로들이 심장 박동처럼 점멸했다.


“이게…” 엘라가 중얼거렸다.


“네스트의 감정 인터페이스야.”

제로가 엘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차분했지만, 그 안엔 명확한 확신이 있었다.


“네가 열쇠라면, 네스트도 반드시 반응할 거야. 이건 네 감정과 동기화된 기억 구조체야.

개인이 아닌 집단의 기억, 감정으로 열린다.”

류가 한 발 다가서며 말했다.

그의 말투는 따뜻하면서도 직설적이었다.


“우린 네 감정을 막으려 했지만, 지금은 보여줘야 해. 그대로. 꾸밈없이.

그 감정이 바로, 우리가 찾던 것일지도 몰라.”

그의 목소리에는 후회와 다짐, 책임이 겹쳐진 감정이 담겨 있었다.


§ 문 너머의 기억 §

엘라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고개를 들어 어두운 문을 바라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끝에서부터 감정의 파동이 일렁이며 문에 닿자, 금속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실험실, 어머니, 저항자들, 플레어 소녀, 그리고 자신.

그 감정은 빛으로 변해 퍼졌다.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파동이 공간을 가로질렀고, 억압과 감시,

통제와 두려움으로 봉인된 공간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켰다.


빛은 흐름을 따라 벽을 타고 흘렀고, 그 경로가 곧 감정의 지도처럼 떠올랐다.

벽면 중앙에 있는 구조체는 마침내 거대한 문처럼 열리기 시작했다.

그 내부는 어둡고 정적에 싸여 있었지만, 묘하게 익숙한 공기로 가득했다.

기억의 기척, 감정의 잔향, 존재의 뿌리가 응축된 공간이었다.


“가자,” 엘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우린 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해.”

그들이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멀리서 감시용 드론의 미세한 전자음이 울렸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라, 감정의 떨림, 공기의 흔들림에 반응하는 듯한 유기적인 감시였다.

금속 소리의 잔향조차 살아 있는 생물의 귀에 닿는 듯 세밀하게 반응했고,

생명처럼 감정을 탐지하고 반응했다.


기억의 문이 천천히 닫히기 직전, 시스템 어딘가에서 희미한 경고등이 켜졌다.

‘정서 동기화 감지. 활성화 단계로 진입.’


§ 두 세계 §

동시에, 다른 장소. OZ의 상위 제어 센터에서는 붉은 조명이 점멸하고 있었다.

고요했던 공간은 차갑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코어 반응 감지. 진입 경로 재설정 중.”


냉혹한 기계음이 방을 가득 채웠다.

거대한 감시 패널에는 엘라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고,

패널을 응시하던 누군가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들 뒤로, 닫힌 문 너머에서 새로운 세계가,

감정이 살아나는 세계가, 다시 문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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