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 출구를 빠져나오자, 밤의 공기가 그들을 감쌌다.
하지만 그것은 차갑거나 상쾌한 기운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에 퍼진 붉은 조명이 하늘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이고 있었고,
공기에는 탄화된 잔여물과 녹슬어가는 금속의 쌉쌀한 향이 섞여 있었다.
그 냄새는 단순한 연소의 흔적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이 타오르고 남은 재와도 같았다.
바람에는 기계의 전자음이 스며 있었고, 그것은 도시의 폐허 위로 메아리치는
심장박동처럼 불규칙하게 울렸다.
지면은 검게 그을렸고, 곳곳에 탄 자국과 뒤틀린 구조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부서진 전광판은 깜박이며 위태롭게 불빛을 흘렸고,
하늘 위에서는 드론의 탐색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움직였다.
언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였던 거리였지만,
지금은 감시와 침묵만이 지배하는 유령 도시로 전락해 있었다.
엘라는 손짓으로 모두를 멈춰 세웠다.
상공에서 드론이 원형 궤적을 그리며 탐색 중이었다.
숨을 죽인 채, 붉은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그들은 맥박조차 발각될까 두려운 듯 동상처럼 굳어 있었다.
하린이 무릎을 꿇고 무전기를 조작했다.
“아직 작동 가능해. 감정 파장 교란 신호도 정상 유지 중이야.”
그녀의 속삭임은 거의 공기와도 같았고, 손끝은 익숙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그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이 그녀 역시 이 긴장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리츠는 주변을 주시하며 낮게 말했다.
“OZ 감시망이 훨씬 촘촘해졌어. 저 드론엔 감정 기반 추적 모듈이 있어.
단순한 생체 신호가 아니라 감정의 진폭까지 포착해.”
“그럼, 지금 우릴 감지하고 있는 거야?”
하린의 속삭임에도 긴장이 서려 있었다.
“아직은 아니야. 억제제와 교란 신호 덕분이지. 하지만 오래 못 버텨.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선명해지니까.”
류는 아무 말 없이 시야의 가장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붕괴된 벽과 그 위를 뒤덮은 이끼, 더는 작동하지 않는 조명.
그의 눈동자에는 어딘가 불안하고 슬픈, 과거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이 지역은…” 류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예전에 있었던 실험 구역이야. 코드명 H-41.”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리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엘라는 눈을 들어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하린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OZ의 병기 실험 대상이었어. 감정 제거 후, 인공 감정 데이터를 주입받았지.
일종의 감정 대체재. 그들은 그걸 '정제된 감정'이라고 불렀어. 통제하기 쉬운, 가공된 감정.”
엘라의 눈이 흔들렸다.
“당신도… 로그 실험체였던 거야?”
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감정 없이 명령에만 따랐어. 감정은 오류, 비효율의 근원이라 여겨졌지.
하지만 어느 날, 한 아이를 마주쳤어. 울고 있던 아이. 그 울음이… 내 안에 뭔가를 흔들었어.”
그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리츠는 눈길을 고정한 채 조용히 듣고 있었고, 하린은 눈을 감았다.
“시스템이 경고음을 내고, 나는 통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지.
왜 그 울음이 그렇게 깊게 박혔는지 몰랐는데…
나중에야 깨달았어. 내 기억 속 어머니의 마지막 눈물과 닮아 있었어.”
하린이 낮게 말했다.
“그래서 탈주한 거야? 실험을 거부하고.”
“그래. 난 OZ의 실패작이었고, 그 실패 덕분에 지금 여기에 있어.”
류는 입을 다물었고, 공기는 잠시 멈춘 듯 정적에 잠겼다.
회색 연기가 떠도는 폐허 속에서, 류는 과거의 잔상에 잠겨 있었다.
그의 표정엔 억눌렀던 감정의 조각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엘라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 기억이 널 만든 거야. 그 감정이, 네가 여전히 인간이라는 증거야.”
하린은 여전히 침묵했지만, 복잡한 눈빛 속에는 이해와 갈등, 그리고 작은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리츠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말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시간 없어.” 리츠가 경고했다.
“드론이 다시 접근 중이야. 두 대. 북쪽 지붕 위에서 우리 위치를 스캔하고 있어.
곧 이쪽으로 올 거야.”
“이쪽이야. 나를 따라.” 류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무너진 벽 사이, 금지구역의 좁은 통로로 들어섰다.
나머지 셋도 조심스레 뒤를 따랐다.
통로는 축축하고 좁았으며, 숨 막히는 먼지와 콘크리트 냄새가 가득했다.
벽에는 낙서처럼 '모든 감정은 기억이다'라는 문장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엘라는 그 문장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이건… 예전에도 본 적 있어. 저항자들이 남긴 메시지야.”
그녀의 눈동자에 뭔가가 번뜩인 듯했다.
과거의 기억인지, 떠오른 단서인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금지구역 입구에 도달하자 공기가 달라졌다.
전자파의 간섭 탓에 무전이 끊겼고, 감정 억제제의 효과도 옅어지는 듯했다.
이상한 정적 속에서 감정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깨어나고 있었다.
리츠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여기선, 진짜 감정만이 살아남는다.”
엘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드론의 붉은빛이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긴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감정의 무게를 견뎌야 해.” 류가 말했다.
“이제 교란도, 억제도 의미 없어. 있는 그대로—네 감정으로 이 전장을 건너야 해.”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감정이 OZ가 가장 두려워하는 거니까. 우리가 느끼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반란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단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리츠와 하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명령에만 따르는 기계가 아니었다.
이 순간, 그들 각자의 감정은 가장 강한 무기이자 유일한 방어였다.
붉은 조명이 금지구역을 향해 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림자와 잔해 사이, 그들의 실루엣은 조용히, 하지만 뚜렷하게 뻗어나갔다.
네 개의 그림자는 교차하며 하나의 궤도를 그렸고, 그 발걸음은 회복과 해방을 향한 전진이었다.
그 문은, 그들 자신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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