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 안에는 침묵과 긴장감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전자장비가 내는 미세한 기계음조차 불안의 불씨가 되는 분위기였다.
감정 송출 장치의 폭주 이후 OZ의 통제는 날카로워졌고,
내부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다는 의심이 구성원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갔다.
모두가 단말기를 움켜쥐고, 서로를 감시하듯 살피며 침묵했다.
“누군가가 OZ에 정보를 넘긴 거야.” 하린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냉정하고 단호했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들이 먼저 알고 있어.”
리츠는 조용히 단말기를 작동시켰다.
그녀 앞에 떠오른 감정 로그는 붉고 푸른 파장이 공중에 입체적으로 드러나며 진동하고 있었다.
붉은 파형은 심장 박동처럼 불규칙했고, 푸른 파형은 얇은 필름이 찢긴 것처럼 날카롭게 갈라져 있었다.
그 파장은 균형을 잃고 서로를 밀어내며 일그러졌고, 뒤엉킨 선들은 마치 고통과 분노가 충돌하는 장면을
시각화한 듯했다.
“이건 누군가 조작한 흔적이야.” 리츠가 말했다.
“파형이 불규칙하고, 진폭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됐어. 진짜 감정이 아니야.”
엘라는 그 말에 숨을 들이켰다.
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었다.
“그럼,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거야?”
기지 안의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침묵 속에서 의심의 시선이 천천히 한 사람에게로 모였다.
제로. 그는 침묵을 지키다 마침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잠깐.”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마치 오래된 봉인을 조심스럽게 풀 듯. 순간 공기가 정지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
“나야. 그 정보를 넘긴 건… 나였어.”
정적이 퍼졌다. 하린이 벌떡 일어나 책상을 쾅 내리쳤다.
“무슨 말이야? 지금 장난해?”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제로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OZ의 감시자였어.
내부 감정 반응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그 데이터를 본사 서버에 보고하는 역할.
감정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치솟으면, 그 정보는 즉시 전송되도록 설정돼 있었어.”
그는 주머니에서 오래된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낡은 기기 안에는 자신의 과거 로그가 저장되어 있었다.
리츠는 단말기를 건네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파형은 부드럽고 규칙적이었다.
감정의 결이 섬세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그 리듬은 오히려 진짜 인간성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건… 네 감정이었어?”
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OZ는 내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몰랐지만, 나는 매 순간을 저장했어.
감정은 억제하거나 숨길 것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언어라고 믿었거든.”
그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예전에, 한 아이의 감정 곡선을 감지한 적 있어.
단말기 너머로 그 진동이 전해졌고…
그건 내게 새로운 시작이었어, 그때부터 내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했지.”
엘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류는 말없이 제로를 바라보았다.
감정을 통제해야만 하는 사회 속에서 누군가 감정을 느끼고 기록했다는 사실은 반역이자, 동시에 희망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리츠가 또 다른 로그를 열며 말했다.
“이건 네 로그가 아니야. 감정 패턴이 다르고, 코드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삽입돼 있어.
일부는 OZ 본사에서만 사용하는 시스템 제어 명령과 일치해.
예를 들어 ‘B-146X’ 같은 보안 키워드가 있어. 그건 우리가 쓸 수 없는 코드야.”
하린이 물었다. “그럼, 제로가 범인이 아니라면…?”
“또 다른 첩자가 있어.” 엘라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바로 그때, 기지의 조명이 깜빡였고, 감정 로그 출력 장치에서 고주파음이 터져 나왔다.
화면에 이상 코드가 떠올랐고, 붉은 잔상이 화면 위를 타고 번져갔다.
『오버라이드 접근 요청됨. 인증자: 불명. 위치: 내부 네트워크.』
“침입이야!” 리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류가 전력 차단 스위치로 달려갔지만, 시스템은 이미 외부 접속을 허용하고 있었다.
“암호 키가 바뀌었어.” 제로가 단말기를 조작하며 말했다.
“내가 설정한 게 아니야.”
엘라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로그가 아니라, 명령 코드였다.
감정을 억제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시스템 명령어.
마치 과거 훈련소에서 봤던 감정 절단 트리거와 흡사했다.
“누군가 이 안에 OZ 명령 시스템을 이식했어.”
하린은 숨을 삼켰다.
“그럼… 우린 아직도 감시받고 있다는 거야. 바로 옆에서.”
그 순간, 한 단말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면엔 단 하나의 문장만이 떠 있었다.
『기억하라. 감정은 무기가 아니라, 문이다.』
엘라는 그 문장을 조용히 읽었다.
하린은 손끝을 움찔였고, 리츠는 스크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문장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신념이자, 이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엘라는 시선을 돌려 제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하린은 조용히 단말기를 쥐었고, 리츠는 그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듯 눈을 감았다.
감정이라는 문. 그 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지 안은 정적에 잠겼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코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기지 내부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공기 중에는 정전기와 금속의 날카로운 냄새가 퍼졌다.
붉은빛의 잔광이 벽면을 타고 흐르며, 마치 기계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리고 아무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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