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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Feb 11. 2022

그럼 실패 지향적 인간도 있나요?

'전 성공 지향적인 사람이라서요.'


이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실패 지향적인 사람도 있나?'


아, 간혹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못하지만 그러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완벽주의자의 경우.

그들은 종종, 아니 자주, 실패를 은연중에 지향한다. (그러니 완벽주의는 좋은 말이 아니다.)


근데 아무튼, 굳이 자신이 '성공지향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저의가, '난 완벽주의가 아니라서 일단 실행하는 편이고, 그것은 높은 확률로 성공을 하게 된다.'는 뜻은 아닐게다.


저 말에 뒤 이어 나오는 말이 그 저의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들은 워딩은 '이거 안 되면 절대로 안 돼.' 같은 말이었는데, 자주 듣는 이 말을, 우리는 결코 흘려 들으면 안 된다. 흘려 듣는 순간, 이 말을 들은 나만 고달파진다. 그러니 다시 잠깐 태클을 걸어보자.


누군가를 위험에서 구하는 일이라거나 기폭장치를 들고 있는 테러범을 암살해야 하는 일이나 인질을 잡은 강도를 제압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안되는 일 같은 건 없다.


그러니까, 소방관이 잡은 호스가 구멍이 나면 안되고, 아덴만에서 해적선에 진입하는 udt의 총기가 불량이면 안되고, 빌헬름 텔이 쏜 활이 사과를 맞추지 못하면 안되는데, 정작 소방관이나 특공대원이나 빌헬름 텔은 그걸 이미 너무 잘 알아서, 남에게 그걸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연습을 하거나 장비를 닦겠지.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일은 안되면 어쩔 수 없단 자세로 임하는 것이 오히려 성공 확률을 높인다.


그러니, 무언가를 미루거나 망치기 직전의 완벽주의자가 하는 변명이 아니고서야, 스스로를 '실패를 지향하지 않고 성공지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자칭하는 것도 마찬가지.



대단찮은 숨은 뜻


'목표지향', '성공지향'은 기질을 설명하는 것이라기 보단, 어떤 상태를 설명하는 데 더 적합하다.


그 두 지향을 자신의 기질이라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목표를 반드시 이루는 사람',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지향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보이는 것을 지향하는 기질'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아닌 척하는 동시에 전달도 하고 싶은 마음'에 사용하는 잘못된 관용어구. 그러니까 허튼 소리. 다른 말로 쌉소리.


반면, 성공을 하면 성공을 지향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뻔하디 뻔한 말, '목표를 이루는 데에는 과정이 중요했다'는 그 말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니까, 남에게 그렇게 말해야만 하는, 정말로 성공과 목표를 지향하는 기질을(그런게 정말로 있기나 하다면), 성공과 목표달성 이후에도 유지하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밖에 없다.


'전 반드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습니다.

전 언제나 성공합니다. 왜냐햐면 성공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전 목표를 놓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목표를 놓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러니까...


'저는 우주를 통제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론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기 위해 우주를 통제하는 척하며 살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그것을 욕망하는 것 자체는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아직 그 성공과 목표달성이 일어나지 않은 때에, 협업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는 것은 어거지나 무례한 말을 넘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러니까 '나는 성공지향적인 인간이야.' 라는 말은,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목표를 어떻게든 이루어야 되니까 너한테 압박을 주고 부담을 공유하겠다',

'니가 나의 성공과 목표 달성을 방해하지 않게 하겠다',

'넌 내 성공을 도와야 하고 내 발목을 잡으면 안된다',

'니가 발목 잡지 않으면 난 성공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인데,


저렇게 말하는 순간,

성공과 목표 달성의 화신이라 자처하는 화자는, 자신의 성공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그러니까, 확실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그런 기질이란 건 어불성설. 그런 건 없다.

비건 지향, 육식 지향은 있어도, '음식물 섭취 지향' 이란 말은 없듯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걍 저 말을 계속 쓰고 다니시면 된다. 그러시라.


아니, 도리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불안하여 저 말을 내뱉게 되는 거라고.


목표 지향적이라고 굳이 말하는 경우엔, 보너스로 이런 뜻도 숨어 있다.

'그래서 과정 중에 ㅈ같이 굴거야. 난 미리 말했다?'


그러니 결론은 뭐다?

저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리고 우린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지라도 저들이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알겠나이다.


이렇게 되물어주자. 넌 니가 실패할 거 같니? 근데 그래서 너의 성공을 내게 의탁하면서, 넌 성공해야된다고 말하는거니? 그런데 그 말을 내게 하는 넌 스스로 언제나 성공을 지향한다는 거지?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지?


되게 바보같아. 하나도 프로페셔널해보이지 않아.



결론


첫 미팅 때 저런 말을 꺼낸 사람과는 같이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덧. 대단찮은 숨은 결론


그런데 그 일을 한 2년 전의 나는 바보.

2년이나 지난 지금,

걔네한테 해촉증명서 떼 달라고 연락해야 되서

빡쳐서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내가 제일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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