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원스쿨의 경우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약 5억 8천 명으로 영어에 이어(단일 언어권인 중국어 제외) 사용자 수 기준으로 세계 제2위 언어(출처; 사이버외대 김수진 교수 수업 자료)라고 하는데 이토록 영향력도 크고 사용자도 많다는 스페인어를 한국에서 배우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알아봤는데 모두 서울에 있다.
그것도 강남이나 종로의 외국어 전문 학원에 가야 한 두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초 과정 위주이다. 중급 레벨로 올라가면 수업이 가끔씩만 개설되고 그나마도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될 때도 있다.
고급 수준의 스페인어 과정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 대학은 어떠한가.
스페인어학과가 개설된 4년제 대학교는 불과 15개 대학뿐이다.
그나마 지방대가 많고 서울 수도권에는 서울대와 외대, 경희대 정도이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은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는가?
간단하다. 스페인어를 배워서 돈벌이가 안되기 때문이다.
브라질을 제외한 라틴 아메리카 전부와 미국 동부와 서부, 그리고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 사용지역에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역으로 스페인 기업이 한국에 진출해 있거나 스페인문화가 한국에 영향을 주는 일도 거의 없다.
기껏해야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가 우리가 접하는 몇 안 되는 스페인어 사용자일 뿐이다.
긴 긴 코로나 기간 동안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여기저기 알아본 뒤에 '인터넷 어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원스쿨' 스페인어 과정을 등록했다. 어차피 비대면 시국이고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오프라인 학원은 찾아보기가 어렵고 시간 맞추기도 힘들어서 시원스쿨은 좋은 대안이자 유일한 대안이었다.
스페인어를 처음 배우는 나는 시원스쿨 스페인어 초급 과정인 '왕초보'과정 1, 2, 3 과정을 연이어 수강했다. 내가 결재한 시원스쿨 1년 무제한 수강권은 말 그대로 1년 동안 시원스쿨이 개설한 모든 스페인어 과정을 무제한 수강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왕초보'말고도 스페인어 '문법'과 스페인어 '회화'의 기초 과정도 수강했다.
강의는 대부분 녹화해 둔지 오래된 옛날 자료였는데 사골국 우려먹듯이 수강생들에게는 수강료를 받고는 업데이트가 전혀 되지 않은 수년 전 자료에 접속하게 해주는 식이었다. 얼마나 오래됐냐면 내가 수강한 때가 2021년으로 2년 전이었는데 이때 수강한 모든 강의 영상이 HD급이 아니라 SD급 저화질 영상이었다.
당시는 공중파 TV에서도 4K급 드라마와 뉴스를 송출하는 일이 흔했던 시절이고 넷플릭스의 웬만한 영화도 다 4K 영상인 때였다.
사람의 눈과 귀는 한번 고급 품질에 적응이 돼버리면 아래 급으로 다운그레이드하기가 몹시 고통스럽다. 그래서 시원스쿨의 첫인상은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21세기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급의 모니터와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나라에서 한 세기 전의 저화질 강의 영상을 팔아먹다니 영상 전공자인 나로선 김이 팍 샜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배우겠다는 내 의지와 열망이 저화질 영상이 준 배신감보다 컸으므로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강의는 한 번에 대략 20분 안팎으로 짧게 구성되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강의 영상은 오래됐지만 강의 내용은 꽤 만족스러웠다. 정말로 스페인어를 초보의 시각에 맞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했고 알아도 별 도움이 안 되는 문법 용어들은 최소화해서 사용했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스페인어는 동사의 변형이 인칭마다 바뀌고 시제마다 다르며 화법에 따라 변화한다. 다시 말해서 '먹다'라는 동사 하나를 제대로 쓰려면 '먹다의 변형' 8, 9가지를 외워야 비로소 먹는다에 해당하는 동사를 자유롭게 구사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어와 존대어 차이를 배우는 어려움과의 비교는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그런데 이 동사에 또 불규칙 동사가 있고, 불규칙은 정말로 예상할 수 없는 불규칙이다. 한마디로 스페인어는 꽤나 어려운 언어인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나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시원스쿨 스페인어를 1년간 듣는 동안 나는 진도를 더 나가기보다는 이미 배운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왕초보 레벨을 무려 세 번이나 수강했다. 왕초보 레벨 1, 2, 3을 한번 수강하는데 보통 한 달에서 두 달쯤 걸린 것 같다. 다른 과목도 몇 개 들었으니 아마도 내가 시원스쿨 1년 무제한 수강권으로 수업을 들은 건 총 6개월 정도는 된 것 같다. 강의도 재밌고 수업 내용도 세 번을 들은 뒤에는 줄줄 외울 정도여서 100% 가깝게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이상 듣지 않은 이유, 그리고 수강 기간 1년 중에서 6개월만 들은 이유는 게으름도 있겠지만 아무도 내 학습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과 외국어 공부를 혼자서 하는데서 오는 무료함, 그리고 배운 언어를 써먹어볼 일이 없으니 실력이 늘지 않고 정체된 것 같은 무력감을 꼽을 수 있겠다. 그렇게 1년이 다 지나가고 그래도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원스쿨은 이미 써 본 카드이고 이젠 뭐가 남았을까.
열심히 찾아봤다.
없었다.
정말 대한민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워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스페인어와 관련해서 개설된 인터넷 카페에서 개인교습이나 소그룹으로 지도하는 제안들이 올라왔지만 올린 글만 봐도 풋내기 선생이고 경험이 없다는 것이 느껴져서 눈길도 끌지 못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찾은 것은 사이버대학이었다. 방통대를 원했지만 무슨 일인지 방통대는 스페인어학과를 개설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렇게 사이버 외국어대 스페인어학과에서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