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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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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Nov 08. 2024

빠진 발톱이 매년 예닐곱 개

빠져도, 빠져도 계속 새로 나오는 발톱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 

*혐오스러운 발톱 사진이 포함된 글입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패스 하시기 바랍니다.


의사에게도 물어보고 자칭타칭 산악 전문가들, 달리기 선수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왜 제 발톱은 이렇게 자주 빠지는 걸까요?'

답은 여러 가지다. 

'그거 발톱을 제대로 깎아주지 않아서 그래요.' 

'신발을 너무 작은 걸 신으시나 본데요.'

'뛸 때 앞쪽으로 발이 쏠려서 그래요. 미드풋을 해야 하는데'

'내리막에 신발과 발가락이 닿아서 그런 건데 신발 끈을 꽉 조이세요.' 


그래서 권고대로 다 해봤다. 

발톱을 미리 적당하게 잘랐고, 신발은 한 치수 큰 걸로 주문해서 앞이 넉넉하게 신어봤다. 착지 때 일부러 가운데로 신경 써서 뛰어보기도 했고 발목 끈을 당겨서 신발끈을 묶고 발가락이 신발 앞부분에 닿지 않도록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내 발톱은 빠진다. 

열개의 발톱 중에 정해진 순서 없이 돌아가면서 빠지는데 엄지와 둘째, 셋째, 넷째 발톱이 돌아가면서 빠지고 새끼발톱은 가끔씩 빠진다. 


늘 그렇다고 할 순 없으나 대체로 지리산 종주같이 짧은 시간에 길고 험한 산길을 걸었을 때 한 개쯤에 피멍이 들고 통증이 생기면서 빨갛게 조짐이 보이다가 며칠 지나면 까맣게 죽으면서 통증은 사라진다. 

달리기 경우에는 30km 이상 풀코스쯤을 달리고 나면 한 두 군데 발톱에서 느낌이 온다. 둘째 발톱에서 넷째 발톱까지는 크기도 작고 그때그때 느낌이 조금씩 다른데 엄지발톱이 빠질 때는 통증이 비교적 크고 발톱이 커서 그런지 전체가 다 죽는 경우도 있지만 한쪽 귀퉁이만 죽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발톱이 전체가 새로 나지는 않고 새롭게 자라 나오는 발톱이 죽은 발톱을 밀어내서 발톱을 깎으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발톱 전체가 죽는 경우 시간이 경과하면 발톱이 두꺼워지는데, 정확히는 발톱이 두꺼워지는 게 아니라 죽은 발톱 아래로 새발톱이 자리를 잡고 나오면서 죽은 발톱이 위층을 이루는 식이다. 이런 경우 죽은 헌 발톱과 새 발톱 사이에는 빈 공간이 생기거나 죽은 피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발톱의 윗부분을 손톱깎기로 잘라내면 새로운 발톱이 모습을 드러낸다. 


발톱이 죽었을 때, 즉 발톱에 멍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면 죽은 발톱에 주사기를 꽂아서 죽은 피를 빼내주면 통증도 금방 가라앉고 흉하게 검은 발톱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기도 하고 발톱에 주사기를 꽂는다는 것이 더 무섭기도 해서 그냥 참고 기다려서 저절로 새발톱이 죽은 발톱을 밀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 발톱 열 개 중 늘 한두 개는 죽은 상태이고 죽은 발톱에 새 발톱이 나와서 멀쩡해진다 싶으면 또 다른 발톱이 죽어버려서 열개의 온전한 발톱을 가져본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여름에 발가락이 나오는 슬리퍼를 신거나 샌들을 신으면 꺼멓게 죽은 발톱이 두 세 개쯤 드러나게 돼서 남들 눈에 띠일까 좀 창피하기도 한데 누가 지나가는 사람 발톱을 쳐다볼까 싶어서 그냥 다닌다. 나의 산타기 이력과 달리기 노력의 훈장이라고 여기고 그냥 다닌다. 새로운 발톱이 뽀얗게 모습을 드러내면 고맙고 신기하다. 만약에 발톱이 치아같이 어릴 때 젖니로 한번 나오고 두 번째로 영구치가 나오고 끝인 형태라면 나는 발톱 열 군데에 임플란트 발톱 시술을 하느라 용돈을 다 써버렸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빠져도 나오고, 그 자리가 또 빠져도 또 새롭게 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무한 발톱을 허락하셔서 나는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오늘도 또 발톱이 빠져라 하고 달려봐야겠다. 


불쌍하고 고마운 내 발과 발톱들. 이미 떠난 내 발톱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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