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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Aug 24. 2022

함뜨로 완성하는 공유경제

우리가 함뜨를 해야 하는 이유 #1. 다 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잖아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함뜨!


  내 첫 함뜨는 '나랑 함뜨 할래?' 편에서의 여행을 하며 했던 함뜨였다. 같은 도안은 아니었지만 코바늘로 담요를 뜬다는 이유로 둘이서 소박하게 같이 뜨기 시작했다. 같이 뜨개를 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떠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 와중에도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함뜨의 맛을 살짝 보니 혼자 뜨는 것보다 같이 뜨는 게 재밌게 느껴졌다.

  그러다 같이 뜨던 언니가 참여하고 있는 오픈 카톡방을 추천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뜨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 채로 그런 모임에 들어가도 되는가 싶은 기분이 들어 거절했다. 그렇지만 언니는 나를 참여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뜨개의 매력에 빠져 못 나오게 하겠다는 열의까지 보였다. 결국 이 초보 뜨개러는 뜨개 모임에 던져졌다.

  


양말을 뜨려면 어떤 실을 사야 하나요?

  뜨개 모임(오픈 카톡방)에 들어가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실의 종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허풍을 붙여 말하자면 내가 가입한 뜨개 모임에는 세상의 모든 실이 다 있다. 초보는 어떤 실을 살지도 어떤 바늘을 살지도 모른다. 그래서 뜨개 모임에 크게 외친다. “양말을 뜨려면 어떤 실을 사야 하나요?”

  조금만 기다리면 양말을 뜰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구매처와 최저가, 적당한 바늘 사이즈, 심지어는 추천하는 실로 뜨면 예쁜 양말 도안까지도 하나의 창에서 다 볼 수 있다. 마치 나만의 '뜨개 검색엔진'을 가진 기분이 든다.

  함뜨의 매력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혼자 뜨개질을 하면 몰랐을 정보들을 서로 공유하고 함께 나눈다. 좋아하는 도안과 실, 바늘 등을 서로 영업하기도 한다. 취향은 무슨 실의 종류도 모르는 초보는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조금씩 취향을 찾아갈 수 있었다.



다 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잖아

  어느 날은 톡방에서 어떤 바늘을 사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온갖 브랜드들이 쏟아져 나오고, 나무냐 스틸이냐, 세트로 사느냐 단품으로 사느냐 등등 그날도 여전히 정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늘도 취향을 탄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서로 선호하는 브랜드가 다르고 바늘의 재료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심지어는 바늘의 길이에 대한 선호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렇다면 내 취향은 무엇인가?

  바늘이라고는 다이소에서 사본 바늘이 전부이고 담요를 살 때 같이 산 코바늘이 전부였던 나는 나의 취향을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그런 바늘들을 전부 사서 만져보고 직접 떠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브랜드가 있는 바늘들은 해외에서 구매해야 하는 제품들이 많았고 오프라인에서는 보기 어려워 확인해볼 방도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바늘 세트 하나쯤 구비해서 소위 문어발 뜨기도 해 보고 바늘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는 뜨개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다. 마침 한분이 대화 중에 제안을 하였다. "이번 함뜨 모임에 괜찮으시다면 가지고 계신 바늘들을 가져와 주실 수 있으실까요? 확인해보고 구매하고 싶어서요."

  그렇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바늘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방법. 잡아보고 떠보면서 천천히 취향을 탐색할 수 있는 방법. 함뜨를 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첫 오프라인 뜨개 모임에서 다 같이 만나서 뜨개 도구를 소개하고 구경하고 만져보고 테스트도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함뜨에서 추천받은 나무 바늘 세트를 사용하고 있다. 함뜨가 아니었다면 이거 저거 사보다가 결국 사용하지 않는 도구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 정말 정말 잘 쓰고 있는 타쿠미 나무 대바늘 세트



함뜨로 완성하는 공유경제


  정보의 바다. 나의 구글인 뜨개 모임은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엄청난 기능이 있다. 바로 일종의 '공유경제'가 가능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뜨개 모임이 공유경제를 이룰 수 있다니?

  뜨개질을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구매가 종종 발생한다. 실 구경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결제를 누르게 되는 것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실뿐만이 아니라 매번 용도에 맞게 구매한 다양한 뜨개용품들이 새로운 용품을 사면서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되고 집안이나 사무실의 부동산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부동산을 차지하고 있는 실을 포함한 뜨개용품들이 뜨개 모임과 함뜨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바로 일명 당근 한다고 표현하는 중고거래 또는 무료 나눔을 통해서!   

최근 나눔 받은 실들과 마커

  이렇게 뜨개러 사이에서 작은 경제체제가 만들어지고 사용하지 않는 용품들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공유경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또 이렇게 꼭 사고팔거나 나눔을 하지 않더라도 자주 대면으로 함뜨가 가능한 뜨개러들끼리는 용품을 빌려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용품을 빌려 쓰거나 나눔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함께 뜨는 행위만으로도 뜨개러들끼리의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뜨개러들 사이의 공유경제가 이처럼 꼭 물건을 함께 쓰거나 나눔을 받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할  있다는 점도 뜨개 모임과 함뜨에서 가질  있는 경제적인 기능이. 우리가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뜨개질은 (색과 굵기, 재질), 바늘, 도안, 기법 등에 대한 정보가 모두 모여야만 시작할  있기 때문에 처음 진입하는 초보 뜨개러들에게 복잡하게 느껴질  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를  맞게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패키지 상품(, 바늘, 도안) 사게 되는 것이다. 함뜨를 하면 원하는 편물을 만들기 위한 정보를 공유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단축시킬  있는 경제적 이득을 얻을  있다.

  나는 아직 초보이기에 이러한 이득을 가장 많이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계속해서 쌓이고 실도 용품도 쌓이는 초보 딱지를 뗀 뜨개러가 된다면 내가 받았던 경제적 이득을 나누는 뜨개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내가 뜨개에 쉽게 진입하고 다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뜨개 경제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기꺼이 나누고 뭔가 선뜻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빌려주거나 나누는 뜨개러들의 돈독한 유대 속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평생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왔던 나는 이제 함께 뜨는 이 사람들과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뜨를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뜨태기가 와서 아 이제 뜨개를 하기 싫은 사람이 된 것일까 할 때면 뜨개 모임에서 어화둥둥 그동안 잘했던 편물들을 읊어준다. 아니면 내 취향에 맞는 도안과 실을 가져와 보여주며 뜨태기가 지나가면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며 넌지시 제안해준다. 그래도 안되면 그냥 기다려준다. 절대 강요하지 않고 자신들도 그럴 때가 있다고 다독여준다.

  한국사람들은 취미라고 하면 마치 취업을 준비할 때 스펙을 쌓듯 치열하게 달려드는 경향이 있다. 나도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때면 재밌어하는 것은 많지만 치열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하고 있는 것이 없어 취미가 없다고 답하였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취미라는 것이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잠시 멈춰도 된다는 것을 안다. 평생 느리지만 착실한 그리고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취미를 찾는 당신에게 함뜨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시작하는 초보들에게 친절하고 침체된 동료에게 공감해주는 함뜨러들이 취미는 조급하거나 불안한 마음으로 하지 않는 것임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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