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백수 권태기
호기롭게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한 게 벌써 두 달 전이다. 백수 생활 5개월 차, 그때의 나는 삶이 무기력하고 재미가 없었다. 거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이 가슴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던 도중,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사하기 전부터 눈여겨보던 브런치에 접속했다. 몇 개의 초안을 정성 들여 작성하고 작가 신청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함을 확인했었다.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던데 어떡하지. 주제가 너무 평범한 건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올라탄 지하철 안에서 합격 메일을 받았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때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느라 정말 애썼다. 메일 화면을 캡처해두고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이라니. 왠지 내가 진짜 성공한 작가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백수 생활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적기 시작했다. 주제를 정하고, 초안을 적고, 어울리는 사진을 골라 배치하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 떨리는 마음으로 발행. 다른 사람들의 글과 나란히 놓인 나의 글을 보는 것 자체가 설렜다.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에 자신이 뿌듯했다. 거기다 사람들이 내 글에 좋아요라도 눌러주면 그날 내 기분은 최고. 맥주가 술술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권태기가 찾아왔다. 다른 게 아니라 ‘백수’의 삶이 지겨워져 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덧 백수 생활 7개월 차, 나보다 늦게 퇴사한 친구들이 벌써 이직을 해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 나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건가? 아니야 나 너무 고생했잖아. 좀 더 쉬어도 돼. 근데 이러다 영영 이직 못하는 거 아냐? 휴직 기간이 너무 길어도 안 좋다던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안은 그렇게 내 삶을 우울에 빠뜨렸다. 다들 뛰어가는데 나만 혼자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영영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건 아닐까. 왠지 부모님이 날 한심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창창한 나이에 이렇게 놀고먹기만 하는 쓸모 0%의 삶을 살아도 되나 싶었다. 거기다 통장 잔고는 왜 이렇게 빨리 줄어드는지. 분명 집에서 놀면 생활비가 덜 들 줄 알았는데 나란 인간은 밖으로 나가나 집에 있나 똑같이 돈을 쓰는 인간이었다. 어느덧 물건 하나를 살 때도 통장에 남은 잔고를 계산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더 이상 백수의 삶이 즐겁지가 않았다.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며 호기롭게 글을 올렸는데 백수의 삶에 권태기를 느낀 나라니. 도무지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못다 한 과제처럼 내내 마음속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억지로 즐거운 척하면서 글을 쓰자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이 시리즈는 망했어요! 하고 말하기도 싫었다. 언제나 작심삼일인 인생을 살아온 내가 이 시리즈마저 이렇게 포기해버리면 진짜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백수 생활에 권태기가 왔다고! 혹 누군가 퇴사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이런 날도 있을 수 있으니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그런 교훈 아닌 교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백수의 삶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쉬는 동안 남들은 나보다 몇 배의 돈을 벌 테고, 내가 쌓지 못한 경험과 경력을 쌓을 거다. 통장 잔고는 점차 줄어들면서 생활을 걱정해야 하고, 또다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시기도 찾아온다.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무능력해서 취직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내야 하고, 때로는 그게 진짜가 될 것만 같아 두려움에 잠 못 드는 밤도 온다. 회사원으로서 늘 좋은 일만 혹은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처럼 백수 생활도 사람 사는 거라 똑같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충동적으로 백수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이 모든 감정을 소화해낼 수 있는지도 충분히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랫동안 퇴사를 꿈꿨던 이가 있다면 이런 날도 있으니 미리 대비해서 부디 똑똑한 백수가 되기를. 이왕 백수로 살기로 한 거, 멋지게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