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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Jun 12. 2019

어른이 된다는 것은

- 백수의 쓸데없는 이야기

카페인은 나의 힘


 맨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때가 생각난다. 혼자 광화문 근처의 한 스타벅스에 갔는데 갓 20대가 된 나는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고 가격도 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었다. 날도 덥고 사람도 많고 서울 지리를 몰라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겨우 이름 아는 곳을 발견해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똥 맛이었다. 와 진짜 이렇게 쓴 걸 사람들이 돈 주고 사 먹는다고? 왜? 왜 돈 주고 고통을 받지? 주변을 돌아보니 비슷한 색의 커피를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마시고 있었다. 여기서 커피가 너무 써서 못 먹겠다는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제 나도 어른이니까. 아마추어같이, 어린애같이 굴기 싫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 입 마실 때마다 숨을 꾹 참고 최대한 많은 양을 마셨다. 돈 아까워서 차마 다 버리진 못했다. 30분도 채 안 돼 밖으로 나오면서 두 번 다시 이런 맛없는 커피는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0년 뒤 나는 1일 2커피를 실천하는 어른이 되었다. 가끔은 ‘뭐야 이 아메리카노 왜 이렇게 맹물이야?’라는 말도 하면서.


혼자 여행가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맥주


 술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집에 갔다. 롯데리아나 캔모아가 아닌 술집에서 만나다니 정말 어른이다 어른. 그때까지만 해도 술이라곤 맥주밖에 모르고 그마저도 거의 마시지 않았던 나와 달리 친구들은 능숙하게 소주를 주문했다. 참이슬이랑 처음처럼은 맛이 그렇게 다른가? 병에 있는 두꺼비 색에 따라서 술 온도를 알 수 있다고? 거의 첨단기술이네. 사람들 진짜 똑똑하다. 안주를 시키고 서로 얼굴이 그대로네, 이게 몇 년 만이야 하는 말을 하며 투명한 유리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 짠. 이거 뭐지. 공업용 알코올 아닌가. 내가 지금 이걸 돈 주고 산 거야? 역한 기운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티를 격하게 낼 순 없었다. 친구들 모두 ‘씁’ ‘캬’와 같은 어른의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까. 나는 익숙한 척 ‘아우 써’라는 말만 내뱉고 얼른 안주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다음 잔을 친구가 따라주는 순간, 나는 소주를 반만 채워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 위에 물을 섞었다. 그걸 본 친구가 뭐하는 짓이냐며 깔깔깔 웃어댔지만 나는 원래 이렇게 마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물을 가득 부었지만 공업용 알코올 맛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율이 망가져서인지 더 이상한 맛이 났다. 한 잔 한 잔 마시는데 너무 괴로웠다. 어른들은 진짜 이해할 수 없다. 왜 ‘아우 맛없어’라고 하면서 이런 걸 돈 주고 마시는 거지. 인생이 아무리 쓴맛이라지만 굳이 내 돈 주고 구역질 날 거 같은 기분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리고 마찬가지로 10년 뒤 나는 술 없인 못 사는 사람이 됐다. 물론 지금도 소주는 마시지 않는다. 특유의 알코올 향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소맥이나 맥주, 와인, 칵테일 등 온갖 맛있는 술을 마신다. 이왕 취하려고 마시는 거 맛있으면 더 좋으니까!



 이렇게 보니 어른이 된다는 건 쓴맛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 같다. 쓰디쓴 아메리카노와 소주가 달게 느껴지는 순간,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 아닐까. 살아보니까 진짜 인생은 더 쓰더라. 나도 5년 뒤, 10년 뒤에는 소주마저 ‘크 달다’ 하고 넘기는 어른이 될까? 부디 그렇게까지 내 인생이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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