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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May 23. 2019

직업은 백수고요, 꿈은 돈 많은 백수입니다 / 3편

난 늘 백수야 오늘도 백수야


#3. 퇴사하면 안 좋은 점


 일이 힘들다는 친구에게 매번 ‘웰컴 투 퇴사 월드’를 외치지만 퇴사 이후의 삶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오늘은 퇴사 생활의 단점을 이야기해보겠다.



퇴사하면 안 좋은 점 하나, '돈'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퇴사하면 돈이 없다. 모아둔 돈이 많거나 퇴직금을 많이 받았거나 어딘가 돈 나올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처럼 모아둔 돈도 별로 없고 퇴직금도 쥐꼬리만큼 받았고 어딘가 돈 나올 구석이라곤 로또밖에 없는 사람은 돈에 쪼들리기 마련이다. 애초에 이렇게 길게 쉴 생각을 하지 않았던 터라 자금 계획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나도 두세 달 정도 쉬면 일하고 싶을 줄 알았지. 근데 놀면 놀수록 백수가 체질이었다.


 퇴사 이후 첫 달은 돈을 펑펑 썼었다. 마치 자유를 찾아 떠난 도비처럼 '저는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를 외치며 여기저기 내 노동의 대가를 뿌리고 다녔다. 쥐꼬리만 한 퇴직금이지만 한 번에 월급의 두세 배가 되는 돈이 통장에 들어오면 마치 빌 게이츠가 된 기분이 든다. 왠지 성공한 사회인 같고 이 잔액이 영원할 것 같고 그렇단 말이다.(너무 기뻐서 통장 잔액 캡처도 해뒀었다)


 그러나 나에겐 누구처럼 비록 30만 원뿐이지만 20년 가까이 절대 줄어들지 않는 마법의 통장 같은 건 없다. 백수라면 그렇게 알뜰살뜰 아껴 살아야 하는데 그분의 절약 정신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아무튼 정상적인(?) 통장이라면 돈은 줄어든다. 그리고 돈이 줄어들면 행복의 정도도 줄어든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니까. 다시 취직을 하면 되는 일이지만 문제는 내 꿈이 돈 많은 백수라는 거다.



퇴사하면 안 좋은 점 둘, '인맥'


 주기적으로 나가는 모임이 있거나 친구가 아주아주 많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대체로 퇴사를 하면 만나는 사람이 줄어든다. 아무리 친했던 회사 동료라도 함께 사무실 의자에 앉아 떠드는 것과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다르다. 연락을 하려다가도 상대방은 업무 시간이라 혹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내가 모르는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이제 정말 외부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긴 회사 동료는 '회사'로 묶인 인연이니 회사 밖에 있는 나와 그 안에 있는 이들을 똑같이 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냥 친구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그들 또한 회사원이기 때문이다. 한번 만나려고 해도 회식이니 야근이니 날짜를 맞추기 어려울 때가 많다. 가끔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한다. 상대방은 회사에서 있었던 거지 같은 일을 말하는데 혼자 눈치 없이 '나 오늘 낮에 카페에 갔다 왔는데 엄청 맛있고 조용하고 행복했어!'라고 떠들어댈 순 없는 거니까. 나의 일상을 공유하자니 백수라 딱히 한 일이 없어서 말할거리도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이 좁아진다.



맛있고 조용하고 행복했던 그 카페



퇴사하면 안 좋은 점 셋, '게으름'


 나는 천성이 게으르다. 거기다 집순이다. 대학생 때는 방학이 되면 며칠이고 집에만 있었다. 집에 있다고 해서 딱히 뭘 하는 건 아니고 누워서 휴대폰 하고 일어나서 노트북 하고 티비 보고 먹고 자는 게 다다. 게으른 나를 잘 알기에 퇴사하기 전에 잔뜩 계획을 세웠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하고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도 몇 권씩 읽고 서울 이곳저곳 탐방해 봐야지. 이른바 '퇴사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었다.


 그러나 헬스장은 등록하러 가기 귀찮아서 안 갔고, 책은 인터넷으로 잔뜩 주문해놓고는 한두 장씩만 읽고 귀찮아져서 내팽개쳤고, 서울은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아서 안 갔다(이렇게 보니까 진짜 인생이 좀 쓰레기 같다). 그나마 내가 지키고 있는 건 아침 8시에 일어나기,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종이 신문 읽기, 강아지 산책시키기 정도다.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다이어리도 샀지만 산 지 한 달 만에 펼쳐봤고 그마저도 책상에 앉는 게 귀찮아 요즘은 백지인 날이 많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퇴사 라이프를 알차게 보낼 수 있지만 나처럼 게으름 그 자체인 사람은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으니 인생 말아먹기 딱 좋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퇴사를 하고 나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은 사회에서 도태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시합 때처럼 남들은 결승선에서 환하게 웃으며 팡파레를 울리고 난리가 났는데 나 혼자 출발선 근처에 바보처럼 서 있는 기분이다. 가끔은 진짜 이래도 되나 싶다.


 물론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모두 본인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회사를 다니면 해결될 문제이기도 하고.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털어놓는 건 나처럼 바보 같은 백수 생활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런 백수의 삶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이제 막 퇴사했다면 나처럼은 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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