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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Oct 11. 2021

원고료를 떼이고 알게 된 것들

글 써서 밥벌이는 하지 못할지라도



나의 '갑'이 부도가 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매달 월급 받아먹는 회사는 아니고, 약 6개월간 프리랜서 작가로 일해준 회사의 이야기다. 그동안 한 월간지에 2페이지짜리 코너를 맡아 글을 썼다. 일러스트를 빼고 나면 a4 한 장 반 짜리 분량에 원고료도 한 달 커피값 정도였지만 스스로 부여한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었다. 이 일을 의뢰받은 당시는 고민이 많았던 때였다. 책을 출간하고 시간이 꽤 흘렀고, 다음 책에 대한 스스로의 기약이 없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매번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책만 내면 세상이 갑자기 바뀌는 줄 알았다. 회사도 그만둘 수 있게 될 줄 알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6개월에 한 번씩 정산되는 인세 성적표를 받아 들고 '글을 써서 밥벌이하는 것은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에 대한 물음표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말 가능한 일이냐고 대체?



이런 나에게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은 금액을 떠나, 직장인으로만 십 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유니콘 같은 일이었다. 이게 진짜 현실에서 가능하구나? 어쩌면 작가로의 밥벌이는 이렇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웬 김칫국인가 싶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그만큼 들뜬 마음과 기대를 안고 일을 시작했다.


글 써서 돈을 번다니. 그뤠잇



그렇게 매달 의뢰가 들어오면, 주말은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A4 한 장 반짜리 원고를 쓰는데 반납했다. 닳고 닳은 직장인인지라 주말은 그저 침대에서 뒹굴거리거나 카페 투어를 다니고만 싶지만 원고가 걸린 주는 좀 달랐다. 진심으로 잘하고 싶었으니까. 그 짧은 글도 휘리릭 하고 써 내려갈 수 없었다. 한 줄 한 줄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된 심정으로 다듬고 또 다듬으며 원고를 썼다. 순수히 주어진 주제가 흥미로워 덕질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도 했고 어느 날은 내 글이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겠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긴 하구나!' 새삼스레 감격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느덧 이 일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을 넘어, 내게 간신히 붙어있는 '작가로의 숨'을 연명할 수 있게 하는 인공호흡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이게 문제였다.

숨을 쉬게 해 준다고 하니까 한 달 두 달 원고료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작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일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는 6번의 원고를 무보수로 넘겼다. 처음에는 원래 이 회사가 외주 보수 지급이 늦는 편이라 해서 그런가 보다 했고 그다음에는 두 달치 한꺼번에 입금해줄 테니 기다려달라 하길래 알겠다 했다. 사회생활 다 헛으로 했다. 순진하게도 아예 돈을 받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한 거다. 아마도 지금 회사에서 월급을 하루만 늦게 줘도 난리 난리, 개난리를 치고도 남았을 난데... 웬 등신 같은 짓을 했나 싶지만. 이제와 보니, 작가로 숨 쉬고 싶었던 미련한 마음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 눈뜨고 코 베였다. 한 달로 치면 이게 얼마 되지 않아도 여섯 달의 원고료를 모아보니 금액도 적지 않았다.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진짜로 돈을 못 받겠어?' 하는 심정이었는데 최종적으로 담당 노무사로부터 구제 가능성이 없다는 메일을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나 진짜로 돈 떼였구나. 그리고 호흡기도 떨어져 나갔고.



그때부터 멘붕이 왔다. 아무리 경험 값을 치렀다며 넘기자 해도 그게 잘 안되더라. 거기에 회사일과 맞물려서 완전히 번아웃이 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할 수 없었다. 글을 써서 즐거웠던 기억들은 이미 악몽에게 잡아 먹힌 듯했다.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 돈 떼먹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괴로워야 하나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도 내 멘탈이 회복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덕분에 언제부턴가 내가 글을 쓰며 무언가 기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동안 글을 써 밥벌이 하기를 기대했고 그래야 작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 글쓰기가 그 기대를 미치지 못하는 것이 괴로웠고. 어쩌면 그동안 나를 괴롭힌 무력감의 원인은 원고료를 떼여서가 아니라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패로 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깨닫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돈을 받지 않아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누군가 나에게 작가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데... 뭘 그렇게 헤맨 걸까? 나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 이렇게 유쾌하지 않은 경험담도 쓰고자 하면 마음껏 적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부끄럽게도 원고료를 떼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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