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흔들리는 도쿄) - 봉준호
개인적으로 여름의 이미지가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여름이면 어쩐지 즐거운 노래가 들리고 사람들이 들떠있다. 하지만 여름의 원초적 이미지라 한다면 땀이라는 것이 먼저 생각난다. 그 땀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은 영화, 정말로 여름에 찍었구나 싶은 영화를 꼽자면 봉준호 감독의 단편인 <흔들리는 도쿄>다.
이 영화는 <도쿄!>라는 영화에 들어있는 영화 중 한 편이다. <도쿄!>는 미셸 공드리, 레오스 카락스, 봉준호 세 감독이 도쿄라는 소재로 단편 영화를 만들고 엮은 소위 단편 영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
<흔들리는 도쿄>는 한 히키코모리가 10년간 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피자배달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이 여름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떠올릴 때면 여름의 이미지가 항상 겹쳐 보이는 영화라고 느껴진다.
여름이면 밖에 나가기 힘들어진다. 특히나 뉴스에서 몇백 년 만에 무더위라는 단어를 보면 기겁할 지경이다. 여름에 밖에 나가기 힘들어지는 상황과 대인기피증 때문에 밖을 나가기 힘들어지는 상황은 엄연히 다른 상황이지만, 어딘가 닮아있다.
영화에선 초반부터 히키코모리의 사전적 정의를 설명한다. 히키코모리란 사전적으로는 ‘틀어박히다’, ‘들어앉다’라는 뜻으로서, 오랜 시간 타인과의 접촉 없이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본어다.
햇볕에 닿는 것은 싫지만 보는 것은 좋아하는 주인공은 히키코모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하지만 멀리서 보는 건 괜찮다는 형식이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완벽하게 정리한다. 책도 차곡차곡 쌓여 있고 화장실 휴지, 피자박스 등 모든 게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완벽에 가까운 집착은 어떠한 결핍에서 기인한 것일까.
10년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아버지가 주는 돈으로 배달을 시켜먹는 주인공의 상황은 고립이라고 보기엔 너무 평온해 보이고 안정된 삶이라고 하기엔 그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정리정돈이 어딘가 불안정해 보인다.
그의 광적인 정리본능과 삶의 루틴을 통제하려는 욕망은 토요일마다 시켜먹는 피자 배달원의 가터벨트로 인해 무너진다. 언제나 배달원의 눈을 보지 않고 그저 땅만 바라보며 돈을 건네던 그의 시선에 낯선 풍경이 들이닥친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바지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가터벨트…. 가터벨트? 그 당혹스러운 감정에 그는 고개를 들었고 그녀와 마주친다.
그녀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자 그의 정신적 동요와 더불어서 실제로 지진이 일어난다. 집안의 것들이 흔들리고 하다못해 그 피자 배달원마저 갑자기 쓰러진다.
난생처음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그는 오도 가도 못하면서 어쩔 줄 모른다. 물을 가져와서 그녀에게 물을 먹이려 하지만 쓰러진 그녀에게 물을 먹일 방도는 없다. 그러자 그는 분무기를 가져와서 그녀의 얼굴에 뿌려본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 리 없다.
그는 유심히 그녀를 살펴본다. 눈을 감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그녀의 팔에 문신을 발견한다. 문신은 3개의 버튼과 그 버튼 각각의 설명이 적혀 있다. sadness(슬픔), hysteria(히스테리), headache(두통). 이 증상들은 각각 현대인이 안고 살아가는 증상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녀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가터벨트 부분 허벅지에는 coma라고 적혀 있고 옆에는 역시 버튼이 있다. coma는 혼수상태를 의미한다. 의학에서 혼수상태란 의식 수준이 정상이 아닌, 즉 각성이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의식은 자신과 주위 환경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여러 자극이나 사건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에 대하여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하는 것(각성)과 주위 환경 및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인식), 이 두 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혼수 [com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coma 옆에는 전원 버튼처럼 생긴 버튼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버튼을 누르자 그녀는 놀랍게도(?) 깨어난다. 깨어난 그녀가 그를 보며 처음으로 한 말은
“눌렀어요?”
마치 정말로 이걸 누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곤 그녀는 이내 안심한 듯이 숨을 뱉는다. 일어난 그녀는 그가 정교하게 쌓인 피자 박스 중에 거꾸로 꽂혀 있는 부분을 지적한다. 그러곤 그의 집을 보며
“여긴 정말 완벽해.”
자신의 헬멧 속을 코로 맡고는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건 정말 끔찍해”
이 말만을 남기고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한 채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 없이 누워만 있는다. 혹은 계단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낸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는 피자를 주문한다. 그는 옷 상의를 나름 깔끔하게 입는다고 셔츠를 입었지만, 바지는 평소 복장이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그녀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녀가 배달을 오기는커녕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짜고짜 들어온다. 그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들어와 집주인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전화를 빌리고 전화 너머 상대에게 화를 낸다. 버럭버럭 화를 내며 자신이 훨씬 내성적인 사람이라 전화기에 소리치는 다소 우스운(?) 그 남자는 주인공에게 그녀가 일을 그만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히키코모리인 그가 히키코모리가 된 그녀를 만나려고 한다. 두 히키코모리가 만날 방법은 단 한 가지다. 한쪽이라도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
그는 나오면서 오랫동안 쓰지 않은 먼지 나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온다. 기이하게도 거리에는 그 말고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모종의 이유로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갈지 버스를 타고 갈지 자전거를 타고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엔 걸어가기로 한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셔츠에 일상 반바지 차림이다. 머리는 땀으로 젖어 있고 한순간에 봐도 더운 듯한 모습이다. 그는 지나가면서 자신처럼 히키코모리가 된 이들을 보게 된다. 다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물며 그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그녀까지도.
거리를 지나치다가 그는 집안에서 스티커 문신을 떼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coma 버튼의 그녀는 주인공의 나오라는 말을 들어도 거부한 채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그가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던 순간처럼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나온다. 간판이 무너지고 모든 게 흔들린다.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며 거리로 나온다. 잠시동안 지진으로 인해 소란이 생기지만 지진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들어간다. 지진이 끝난 후에 그녀 또한 다시 들어가려고 하자 그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집에 들어가려는 그녀를 말리다가 그는 그녀의 팔을 잡는다. 그녀의 팔을 잡는 와중에도 절묘하게 그의 손끝은 그녀의 버튼 문신에 닿는다. fear 아래에 있는 그 버튼은 love라고 새겨져 있다. 버튼의 신비함 때문인지 그녀는 서서히 표정을 풀고 그를 바라본다. 그 또한 그녀를 지긋이 응시한다. 서로를 마주 보는 표정을 카메라는 흔들리며 그대로 비춰준다. 마지막에 그는 나지막이 흔들린다.
도쿄를 소재로 했다는 이 영화의 배경 탓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 도쿄라는 소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도쿄는 일본의 수도다. 인구도 140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이며 어느 정보지에 따르면 살기 좋은 도시라고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도시인 듯하다. 도쿄와 일본. 개인적으로는 여행지로 가보고 싶고 친근한 이미지다. 도쿄의 쇼핑몰이나 맛집들이 떠오르고 여러 유적지가 떠오른다. 이렇듯 우리가 흔히 갖는 도쿄와 일본의 여러 이미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 나온 대로 지진이라는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다.
지진은 어쩌면 일본을 상징하는 재해일지도 모른다. 흔들린다는 것은 지진이라는 외부적인 힘 때문에 중심을 잃는 상태다. 일본은 지진이 잦은 환경 탓에 내진 설계가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도 일본의 내진 설계처럼 안정된 루틴과 삶을 지향한다. 그의 집은 어떤 집착이 느껴질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외부적 요인을 지극히 꺼리는 그는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 히키코모리다.
그렇다고 그가 외부적 요인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탁도 해야 하고, 여러 생필품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 그가 토요일마다 시켜먹는 피자는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이 그의 집에 들어와야만 얻을 수 있다. 그 외부적 요인이 가터벨트의 그녀다.
흔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이야기에선 기존에 있던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줄 이성이 나타난다. 그로 인해 주인공들의 상황은 크게 바뀐다. 내진 설계를 했다고 해서 지진 피해를 완전히 줄일 수는 없는 것처럼 그가 가진 안정에 대한 집착도 균형을 잃어간다.
그가 차곡차곡 일정하게 쌓은 피자 박스를 그녀가 보곤 한 개의 피자 박스가 뒤집혀 있었단 사실을 그에게 알려줄 때부터 균열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화는 다소 노골적인 메타포로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카메라를 흔든다.
좋아하는 상대를 보면 이상하게 긴장하게 되고 저절로 땀을 흘릴 때가 있다. 긴장은 일종의 균형이 흔들린 상태다. 영화에서 땀은 몇 가지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가 그녀를 찾아 나설 때 달리다가 흘린 땀, 햇볕 때문에 더워서 흘린 땀, 긴장해서 흘리는 땀. 이 영화가 어떤 세련되고 심오한 의미를 담은 비유를 나타내진 않지만 이렇게 정직한 비유가 오히려 더 인상적일 때가 있다.
때문에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정직한 비유의 영화다. 누군가는 평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름이면 가끔 히키코모리 주인공이 흘린 땀이 강렬하게 생각날 때가 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 남자가 무슨 이유 때문에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까. 얼마나 강렬하게 만나고 싶었으면 자신의 양식을 바꿀 정도로 긴박했을까. 게다가 이런 무더위에 밖으로 나간다니! 그의 결단에 절로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히키코모리라는 일본의 사회적 문제와 지진이라는 일본의 자연적 문제를 봉준호 감독이 도쿄를 자신만의 시선과 함께 다룬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분석적 판단은 잠시 뒤로 미뤄도 될 정도로 이 영화는 짧지만 조밀하게 조직된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게 느껴지는 괜찮은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로튼 토마토 총평 중에 “퀄리티가 고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감독이 선사하는 도시에 보내는 상상력이 풍부한 러브레터.”라는 평이 있다. 러브레터. 알베르 카뮈가 한 글에서 쓴 문장이 떠오르는 총평이다. “우리가 한 도시와 주고받는 사랑은 흔히 은밀한 사랑들이다.” 도쿄라는 도시와 주고받은 사랑을 은밀하게 꾸며낸 이 영화는 한 번쯤은 봐도 좋을 영화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여름에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