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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Sep 01. 2021

어떤엄마로 기억되고 싶냐면

아기엄마의 투병일기

뇌전이가 의심되니 본원에 가라는 말을 듣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당장  눈앞에 산적해있는 일들이 산더미여서, 그것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잠못드는 밤들이었다.

특히 정밀검사 결과를 듣는날 새벽은  불안함이 극에 달했던  같다.

결과는 원인을   없으나, 뇌상태 문제 없음이었다. 대체 검진센터 기계에서는  그렇게 찍혔는지   없다고. 어쩌면 촬영당시 음영이 잡힌  일지도 모르겠다는게 내가 들은 소견이었다.

뇌상태 아주 좋음이라고.

갑자기 뇌 날씨가 매우 맑음 으로 들리는건 왜 였을까.

유방암의 뇌전이의 경우, 뇌전이가 아닌 뇌종양의 경우 등으로 나눠 뇌에 생기는 문제에 대해 자료를 찾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죽으면 너무 억울한데!'

물론 이번에 처음  생각은 아니다.

나는 억울했다.

여학생이어서 남학생에게 교직이수를 양보해야해야 했을때에도 억울했고, 여자라서 유학은 안된다고 반대하시던 부모님의 반대도 억울했고, 아이 출산이 임박했다고 사직을 권고받았을때도 억울했고, 기껏 결혼하고 아이낳아 살며 아등바등 새로운 경력을 만들었는데 암이라는 말을 들어서 억울했었다. 물론  억울함의 강도를 굳이 비교를 한다면 이번이 가장 높았을 것이다.

그 암을 딛고 다시 내 이름을 살아가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일이 손에 익고 한껏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는데 또 다시 투병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못견디게 화가 났다.

뇌전이의 경우, 초기에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병 위치가 가장  변수라고 한다. 내가 가져간 영상자료를 보고 본원에서 단박에 문제 부위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을 보면, 분명 초기일테니 관건은 병변의 위치일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사진을   모른다.

제발 개두술로 해결할  있기를.

제발 치료가능한 부위이기를.

제발 뇌막을 통과할  있는 약제를 의료보험적용 받아 투여받을  있기를.

아직 오지도 않은 상황에 대한 수없는 가정과 기도와 염원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잘못된다면 세상에 남겨질 딸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유방암 투병중에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내가 잘못된다면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  것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데,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할까.

물론 이런 생각을  해본 것은 아니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유산상속에 관한 유언장을 작성하고, 법적으로도 보호자인 남편이나  외의 사람들이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 생각난김에 변호사 상담은 받아볼까 어쩔까.


 시절  생각의 결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엄마라는 하나의 인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생각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루하루가 빠듯한데 삶에 대한 의지를 애써 인식해가며  여유가 솔직히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뿐.


그러다 다시  생각을 붙잡게  계기가 뇌전이 의심소견이었다. 치료와 생존가능성이 너무 낮아서  불안했고, 그래서  살아갈 의지에 대해 마음을 쏟게 되었던  같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

내가   있는 선에서 최선을  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성애는 가지지 못했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데리고 앉아 책을 읽어줄 시간이 없더라도  일을  시간만큼은 확보해놔야 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재발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버티고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 것인지를 먼저 떠올리는 것일테다.

그러니 아이에게 물려줄 보물상자에 보석과 함께 논문을 넣어줄 생각을 했겠지. 엄마가 세상에 없는 때에 아이가 홀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본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이겨낼 힘이 엄마라는 존재에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희안하게도  마지막 모습이 남편에게 어떠했으면 좋겠다- 생각이나 바람은 들지 않는다. 오직 자식에게 남겨질  모습만 걱정인 것도 어찌보면 모성애일까.


그간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해왔던 글들을 엮어 책을 냈다. 출판사을 알아보는것도 힘들고 지치고, 사실 너무 바빠서 pod 출판 형식으로 내고 손에서 털어버렸다.

맞다.

생각과 손에서 털어버렸다는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나중에 내가  딸에게 물려줄 보물상자에 담아낼 엄마의 컨텐츠가 하나  생긴다는 자부심도 자리했던게 사실이었다. (.. 결혼제도에 관한 이야기인데, 우리 부부의 신혼시절 갈등이  담겨있어서 남편이 싫어하려나.)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도 갖고싶은 명품백 리스트가 노트 한 페이지는 넘기고, 내 세대를 넘어 자식에게는 더 풍요로운 삶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도 솔직히 강하다. 아이 돌잔치에서는 아이가 돌잡이때 돌상을 통째로 잡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었다. 돌상 안에 있는 내용물들이 전부 좋은 의미를 갖는데, 그걸 한꺼번에 다 잡아내는 방법은 돌상을 잡는거니까. 어찌보면 죽어서까지 내 자식에게 힘이되고 자랑이 되는 존재로 남고싶다는 바람 또한 나 라는 사람의 욕심많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 어떠랴.

이렇게 생겨먹은걸.


나는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이름을 놓지 않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딸에게 힘이되고 자랑이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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