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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Sep 05. 2021

아이 교육에 안좋아!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이었다.

열차 안에서 물건을 파시는 아저씨가 우리 칸에 들어오셨다. 이런 분들을 뭐라고 칭해야 할지 몰라서 찾아보니 2013 어느 기사를 통해 당시에는 기아바이 라고 불렸다는걸   있었다.

천생 학자 느낌의 중년의 기아바이 아저씨는 우비처럼 생긴 돗자리를 판매하셨다.

1장에 5천원이었던가 3천원이었던가.


같은 칸, 우리 맞은편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큰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카드도 되나요?"

카드는 안된다고 했다. 계좌이체는 된다고.

열차 안 사람들은 돗자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또 한 말씀을 거드셨다.

"저거 깔고 앉아있다덮고 자면 아주 따뜻하고 좋아. 좋다니까요."

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덮고자도 좋다고 합니다..”라며 말끝을 흐리시던 중년의 아저씨는 급히  칸으로 자리를 옮기셨고 이내 아주머니의 비난이 우리 가족에게 쏟아졌다.


 데리고 나왔으면서 저런것도 하나  사준다고!

 사람도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저렇게 나와 고생하는건데 그거 하나도  사주니 애가  보고 배우겠냐고!

 교육에  좋은 거라고!


그 아주머니는 우리가 지하철에 올라탄 순간부터도 행색이 좀 독특한 분이셨다.

구멍이 숭숭 뚫린 가방에 움직이는 물체를 넣고선, 가방에서 꿈틀할때마다 허공에 대고 뭐라고 화를 내셨다. 초가을에 합성밍크코트를 입고선 덥다며 옷을 들춰 몸을 계속 긁었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있지 않은 승객이 있다는 신고가 있다는 경고방송에는 마스크로 선글라스를 덮어버리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하필 우리가 자리잡은 칸이 강냉방칸이었고 약냉방칸에는 자리가 없어보여서 추워하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끌어안은채로 이동중이었는데, 우리가 슬금슬금 아주머니를 봤던  처럼  분도 우리를 관찰하셨던 것일까.

우리가족, 정확히  눈을 응시하며 비난을 하는데 대응을 하고싶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같아 보이는 사람이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랬던  같다.

못알아들은척 애매하게 웃어 넘기려는데 남편이 나섰다. "아주머니. 마스크 똑바로 쓰세요."

남편의 낮고 단호한  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정거장에 도착했고  아주머니는 서둘러 열차에서 내리셨다.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돕고 구제하며 사는 것이 무조건 옳고 선하다고 배웠다.

대학생 시절에는 용돈을 쪼개가며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분들께 적선도 하곤 했었다. 이제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지만,  행색이 젊잖은 행상의 뒷모습이 솔직히 아른거렸다.

맞다.

이 어려운 시기에 가족과 살겠다고 거리로 나온 한 가정의 아버지이다. 그깟 5천원이 뭐라고 아이앞에서 그런 인색한 모습을 보이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난 이후, 현실을 인식한 나에게는 결코 우스운 돈은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 그걸 왜 사야 하는거지.

아이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사놓는건 낭비라고 가르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생각의 내면은 조금 더 복잡하다.

우리 부모님은 다르셨다.

늘 하나라도 더 사주셨고, 잔돈도 받지 않으셨었다. 하나하나 따지던 나에게 불쌍한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굴지 말라고도 하셨더랬다. 다 언젠가 선한 끝은 돌아온다고.

아버지가 안계신 하늘 아래에서, 아빠 카드 긁고 살던 호시절 지나간 인생의 깨달음은 달랐다.

선의와 낭비와 인색과 경제적인 것의 차이를 정립하게 되었달까.

집 여러채 팔아가며 교회를 세우셨던 부모님이 생각하신 선의는 지금의 내가 보기엔 낭비였다. 과하게 호의를 베풀수록 호이가 된다는걸 끝내 인정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여실히 보며 자랐다. 지금도 엄마는 "신께서 복을 주시면" 이라는 멘트가 모든 문장의 시작이지만, 그 말을 들을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복도 내가 내 그릇을 지킬 수 있어야 복인거라고'

오늘 지하철에서의 나에게 5천원은, 인색이었을까 경제적인 선택이었을까.

그럼 그 객차안에 있던 다른이들은 나와 달랐을까.

입으로 큰 말소리를 냈으나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그 분은 선의는 제대로 목적에 닿은 것일까.

아이 교육에 좋지 못하다는 말이 생각날 즈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잠든 아이를 업고 내리는 남편의 팔을 따라 내리며 생각했다.

인색이었을지 경제적으로 옳은 교육이었을지는 차치하고라고, 아빠라는 존재가 가족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정말 좋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뒤통수 한 켠의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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