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 안의 등불이 꺼졌다.
한때 이름이 바람처럼 떠다녔고
귀 기울이던 목소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거리의 유리창은
거울처럼 풍경을 삼키고,
낯선 얼굴들을 되비춘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을 잃는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마음의 북소리가 멈추었기 때문일지도.
더 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왜 걷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발걸음은 침묵의 리듬을 따라 흐를 뿐.
누군가 묻는다—
왜 혼자 걷느냐, 왜 말을 아끼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말은 파도에 부서지는 바위처럼
침묵과 비슷한 형체만 남았기에.
나는 차라리 그 안으로 가라앉는다.
침묵은, 나의 가장 오래된 언어였다.
읽다 만 책의 빈 페이지에서
낯선 나를 마주하고,
술잔 너머 어둠 속에서
내 흔적이 천천히 흩어진다.
세상은 정답을 요구하지만,
나는 오답의 미로 속에서
숨 쉬는 법을 익혔다.
모래 위에 새긴 질문만이
끝내 살아남는다.
사상의 경계, 이름 없는 여백에
나는 오래 머물렀다.
완전한 체계는 닿을 수 없는 신기루였고,
끝없는 질문이 나를 누른다.
그 무게는 말 없는 중심이 되어
뼈와 관절처럼 나를 지탱한다.
이름 없는 자화상에 나를 그려본다.
마음 한켠 그늘진 자리,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바람에 흔들리지만 사라지지 않는,
아직 남은 뜻의 형상이다.
세상은 내가 아는 노래를 바꾸어 부른다.
그 음률이 낯설어, 따라 부르지 못한다.
나는 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낯선 시간 속을 걷는다.
가끔 꿈을 꾼다—
누군가 어둠 속에 맴돈 내 목소리를
다시 부르는 장면을.
그러나 그 얼굴도, 그 목소리도
내가 만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낡은 노트 한 귀퉁이에 적힌
색 바랜 문장처럼
나는 존재했고, 지워졌다.
다시 쓰이지 않을지라도
스스로의 윤곽을 새긴다.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