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맨이 문 앞에 상자를 놓고 간다.
상자 안엔 내가 클릭한 욕망이 들어 있다.
아마존 프라임의 속도로 도착한 외로움,
당일배송 우울, 새벽배송 불안.
리뷰를 쓴다.
“포장 깔끔, 배송 빠름.
하지만 내용물이 달라, 별 하나 뺍니다.”
배달앱을 켜면
내 허기가 지도 위 붉은 점이 된다.
GPS는 내 위치를 정확히 알지만
나는 내가 어딨는지 모른다.
오토바이 소리가 멀어진다.
누군가의 저녁이 식어간다.
나는 창에 이마를 대고
배달 완료 알림을 기다린다.
넷플릭스가 말한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
유튜브가 속삭인다.
“당신을 위한 영상.”
인스타그램은 보여준다.
“당신이 팔로우할 사람.”
그들은 나보다 나를 잘 안다.
나는 그들의 제안을 따라
내 취향을 배송받는다.
택배함 번호: 1004
비밀번호: 내 생일 4자리
상자를 열면
내가 버린 과거가 들어 있다.
반품신청서를 쓴다.
사유: 단순변심
교환 희망사항: 없음
환불 계좌: 버림
“배송 빨라요.”
“포장 깔끔해요.”
“재구매 의사 있어요.”
“판매자 응답 친절해요.”
별점은 다섯 개.
하지만 내 삶에는
평점을 매길 수 없다.
새벽 다섯 시,
마켓컬리 트럭이 지나간다.
어젯밤 주문한 새벽배송—
신선한 절망, 유기농 고독.
냉장고에 넣어둔다.
유통기한: 오늘까지
소비기한: 어제까지.
“3만 원 이상 무료배송”
장바구니에 쓸데없는 걸 담는다.
배송비 2,500원을 아끼려
2만 원어치 후회를 산다.
결제 완료.
남은 것: 빈 통장과
가득한 택배상자.
내 외로움은 지금 어디쯤일까.
송파구쯤 지나고 있을까,
강남대로를 달리고 있을까.
배송조회를 새로고침한다.
상태: 배송 중
예상 도착 시간: 미정
“고객님, 주문하신 상품
문 앞에 놓고 갑니다.”
문을 열면
아무것도 없다.
도난신고를 할까 하다
그냥 문을 닫는다.
어차피 내가 주문한 건
배달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내일도 또 주문할 것이다.
배달앱을 켜고
장바구니를 채우고
결제를 누를 것이다.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배달되지 않을 것의 ‘배달 완료 알림’을.
별점을 다시 매긴다.
“배송은 빨랐으나
상품이 달랐습니다.
환불은 불가라네요.
다시는 이용하지 않겠습니다.”
저장하지 않고
창을 닫는다.
내일 또 주문할 것이니까.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