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 불가능한 경계 3

- 움푹 팬 자리 위에

by 진경


이따금,

우리는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 자리를

등 뒤에서 느낀다.

방석처럼 눌려버린 구호들,

등받이에 묻은 체념의 먼지들.


비탈진 언덕 위,

한때 ‘광장’이라 불렸던 곳엔

이제 무선기만 하나 놓여 있다.

누군가 주파수를 맞추려다 멈춘 채,

정적 속에서 간헐적으로

뭔가 전류 같은 것이 맥박 친다.


우리는 다짐하지 않는다.

다짐은 너무 쉽게,

벽에 부딪쳐 가루가 되니까.


대신 누군가는 매일

한 알의 못을 벽에 박는다.

울리지 않는 종을 닦는다.

절단된 코드 끝을 입에 물고

아직도 이 금속이 짠맛을 내는지를

혀끝으로,

혀끝으로.


몸은 오래전부터 기억의 보관함이 아니다.

몸은 그 자체로 갈라진 도로다.

손등 위로 흐르는 세제 냄새,

무릎 뒤 접힌 곳에 달라붙은

작은 실밥들까지도

시간이 남긴 좌표다.


불가능한 말들 대신

우리는 자세를 바꾼다.

앉은자리에서 무릎을 굽히고,

굽은 등을 세우고,

천장을 쳐다보지 않고

벽을 바라본다.

거기서

균열이 시작된 것을,

우리만은 안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이란 말을 삼키고,

아무 말 없이

의자 하나를 뒤로 밀어둔다.

다음 사람이 앉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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