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이 간 시간의 지도 위에서
어떤 결심은
목구멍 끝에서 머뭇거린다.
혀끝에 올라탔다가
다시 침으로 녹아내린다.
우리는 터질 것 같은 고요를 견뎠다.
폐광 깊숙한 곳에서
쇠스랑이 벽을 긁는 소리처럼
서로의 숨소리만 들으며.
세상은 언제부터인가
첫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같은 장면만 되풀이했다.
벽돌 틈새로 스며든
누런 전단지들이
바람에 떨어질 때마다
우리의 입술도 함께 떨렸다.
한때 ‘혁명’이라 쓰인 깃발은
더 이상 펄럭이지 않는다.
그 대신
지하실 모퉁이에서
녹슨 파이프를 타고
누군가의 맥박이 기어간다.
나는 그것을
길 잃음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이정표가 뽑힌 들판에서
맨발로 방향을 더듬던 자들의
발톱 밑에 박힌 가시라 부른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다.
그건 어떤 말도
함부로 뱉어선 안 될
입 안의 무게다.
이제야 우리는
구호 대신 구멍을,
속도 대신 호흡에 기대어
한 뼘씩,
다시 시간을 기운다.
금 간 지도 위에서도
우리는 목적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발바닥에 스며드는
진흙의 온도가
아직 흐르고 있다고,
이 순간이
아직 굳지 않았다고
중얼거린다.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