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 이전의 시간

― 말해지지 않은 존재의 기억

by 진경


나는 문법 이전에 있었다.

아직 말이 오기 전,

울음과 숨결이 뒤엉킨 시간.

소리는 있었지만, 뜻은 없었다.

몸은 이미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언어로 옮겨지지 않는다.

냄새와 촉감, 비틀린 표정,

그리고 끝내 뱉지 못한 어떤 이름.

모두가 입 바깥에서 사라졌다.


나는 배웠다.

말하는 법보다

먼저 말하지 않는 법을.

틀린 문장을 고치기보다

고장 난 감정을 숨기는 법을.


선생님의 빨간 펜이

내 작문 위에서 피를 흘렸다.

맞춤법, 띄어쓰기, 높임법—

내 혀가 하나씩 잘려나갔다.

교정된 문장 사이로

나는 점점 작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꿈속에서 할머니가 나타나

손가락으로 공중에 글자를 그리셨다.

그 글자들은 사전에도 없고

교과서에도 없었지만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깨달았다.

내 안엔 여전히

말로 쓰이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 세계는 규칙보다 크고,

형식보다 낯설며,

누구의 문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 말이 나를 이룬다.

그 말들로 나는 지금도 살아간다.

침묵과 오해,

비속어와 속삭임,

모두가 나의 일부다.


나는 문장 바깥에서 시작된 존재다.

누군가에겐 비문이고,

누군가에겐 이상한 억양이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나다.


문법은 나를 누르려했고,

나는 그 틈에서 피어났다.


내 입 안에서

새로운 문장이 꿈틀거린다.

비틀려도 좋고, 틀려도 괜찮다.

문법은 늘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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