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의 위계와 해방 사이
나는 울음을 배우기 전에
표준어 억양부터 배웠다.
‘괜찮아요’가 ‘싫어요’보다 먼저였고,
진심은 늘 맨 뒤로 미뤄졌다.
말끝을 흐리는 습관은
어릴 적부터 몸에 배었다.
눈치를 먼저 읽고,
감정은 모서리를 깎아냈다.
국어책 속 대화문은 언제나
정중하고 둥글었고,
나는 그것이 어른스러움인 줄 알았다.
자기 검열을 미덕이라 배운 시대.
교실 한복판에서
화를 낸 친구가 울고 나간 날,
선생님은 ‘감정에 휘둘리지 마’라고 말했다.
나는 그날부터,
내 안의 뜨거운 것들을 얼려갔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아팠을 때
나는 울 줄을 몰랐다.
‘괜찮다’만 반복했고,
슬픔은 목구멍 어딘가에서
돌덩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러나 언제나 말의 방식에는
지켜야 할 높낮이, 간격,
보이지 않는 족쇄가 있었다.
사장실 앞에서 연습하는 목소리와
친구에게 건네는 말투 사이,
내 혀는 갈라져 있다.
가면을 쓴 언어, 벗은 언어로.
어떤 감정은 말이 되고,
어떤 감정은 침묵 속에 묻히고,
말로 엮이지 못한 감정들만이
혀끝에 가시처럼 박혀 있다.
나는 지금도 질문을 삼킨다.
말의 위계를 지나
숨결까지 삼켜버린 다음에야
조심스레 한 마디를 꺼낸다.
오늘 밤,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처음으로 소리쳤다.
아무도 듣지 않는 방에서
검열되지 않은 목소리로—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
화났다고 외칠 수 있다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 있다”
그 목소리는 낯설고 거칠었지만
마침내 나의 것이었다.
혀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언어가 시작되었다.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