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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누 May 02. 2022

결혼에 대한 고찰


결혼이라는 건 대체 뭘까.



인간이 진화하고 문명이 발달하며, 어쩌면 이제는 ‘결혼'이라는 형태의 사회적 구속이 필요 없는 시기가 되었는데도 우리는 왜 결혼을 하는 걸까? 나는 왜. 주변의 그 누구도 나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일까?




내가 결혼을 생각한 첫 번째 단계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의 가치와 연결된다. 나는 재미있게 살고 싶었다. 쾌락을 추구한다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고의 폭을 넓혀가는 것을 즐겼다. 길고 긴 우주의 흐름 어딘가에서, 무구한 역사와 인간이 만들어온 문명을 이해하는 것. 조금 욕심을 낸다면, 그 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나는 감정을 갖고 비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틀 밖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공간에서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만 남았고, 나 또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피했다. 나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고 말하며 우물에서 나오기는 주저하는 개구리로 남아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또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해석하는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오빠와 사고방식의 차이로 말다툼을 한차례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성장한 거 같은 상쾌함도 있었다. 내가 있는 위치나 나의 사고가 어디에 갇혀있었던 것인지를 조금 더 객관화해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랑 함께 있으면 혼자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새로운 환경에 도전할 수 있었고,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오빠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또 어떤 식으로 바뀌고 성장해갈지 궁금했다.


두 번째는, 진정으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좋았다. 오빠와 나는 서로 잘하고 못하는 것이 비교적 극명하게 분리되는 편이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예컨대 나는 전자기기를 분석하고 고치는데 취약하다. 그래서 보통 기본 세팅이 잘 되어있는 물건을 구입하고, 별도의 커스터마이징 없이 기계에 나를 익숙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적응한다 (이 방식도 혼자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오빠가 유심히 나의 행동 패턴을 보면서, 현재 사용하는 자판의 출력을 바꾸고 다른 기기와의 연동방식을 조정하면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이었지만, 전보다 훨씬 더 쾌적하게 사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오빠가 잘 놓치는 중요 일정을 알려주거나 구조화하여 생각하는 부분을 도와주고 있다. 종속되는 방식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각자 잘하는 것을 분담하는 느낌이 되어 부담 없이 서로에게 등을 맡길 수 있었다. 법적으로 결혼을 하면, 오빠와 나 사이에 거래 비용이 없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협업하며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결혼을 생각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주변에 결혼을 하거나 고민 중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답변은 제각각이다. 어떤 친구는 비슷한 성향의 다정한 사람을 만나 소소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고, 또 어떤 친구는 부부 사업가로 함께 성장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 보니 원하는 배우자상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닮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 반면,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모습에 호감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백 쌍의 부부들에게는 백 개의 결혼생활이 있다.


오빠와 나 사이에는 어떠한 극적 로맨스도 없었고, 사소한 문제로 자주 다투고, 여전히 오빠를 잘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오빠와 결혼을 하면 더 행복할까? 지금 결혼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일까? 다른 더 좋은 대안은 없을까? 모두 확실하지 않다. 나의 경우 앞서 서술한 이유로 ‘오빠와의 결혼생활’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두루뭉술하게 생각만 하다가 결심한 계기는 오히려 단순했다.

오빠와 새벽까지 대화를 하다가 잠들었던 날, 문득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오빠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 오빠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억해준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다른 모든 질문은 부차적인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매 순간 이성적인 결정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오히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그 누구보다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 중 가장 결혼에 시큰둥했던 내가 갑자기 결혼이라니. 새삼스럽지만, 삶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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