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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과 학생 Mar 12. 2024

[우울증 극복기] 여섯 번째 이야기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처럼

야간 비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을 볼 수 있어서였다. 언젠가 꼭 한 번 아내와 함께 비행하는 게 꿈이었다. 연료가 떨어지고 엔진이 꺼지면서 구름 밑으로 내려간다. 점점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의 불빛들을 보며 그가 마음속으로 외친다.

'저기가 내 별이었구나'

그는 자신이 놓쳤던 것을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가길 소망한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비아 에버 메일 극 중에
(뮤지컬-Via Air Mail)


다시 눈이 떠졌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은 거를 보아서는 아마 밤인 거 같았다. 몸을 일으켜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비상등과 작은 흰색 불 몇 개만 켜져 있었다. 복도에 시계가 하나 있었는데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으로 여기서 새벽에 일어났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너무 심심했고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도 싫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도 싫다. 다시 눈을 감았다. 자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다. 아침이었고 다시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아침식사를 하고 처음으로 책을 집었다. 읽어볼까 했지만 어떤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책을 덮고 원래 위치에 넣어두었다.


이제는 면회시간만 기다려진다. 그나마 나랑 비슷한 나이대인 청년과 조금 이야기해 볼 만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누워있고 싶어서 다시 병실로 발길을 돌렸다. 문고리를 내리고 들어가려는데 내려가지 않는다. 누군가 내 병실 문을 잠가놨다.


"네가 침대에서 잠만 자고 밤에 잠을 잘 못 이루는 거 같아서 이제부터는 자는 시간 외에는 병실에 못 들어가"


이제 내 공간까지 사라졌다. 하는 수 없이 면회시간만을 기다렸다. 


오늘도 아빠가 왔고 내 속옷도 가지고 오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는데 분명 1시간 면회시간인데 체감시간은 5분이다. 아빠가 남색 카디건을 입고 오셨던 기억이 있는데 그 촉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많이 따뜻했다.


아빠가 가고 나면 다시 외로움을 느낀다. 간호사분들이랑 친해지기도 했고 약 많이 먹는 청년이랑 친구도 했는데 이 관계는 단지 내가 여기서 버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저녁시간 약을 받았다. 이번에는 작은 수면제 하나를 더 처방받았다. 약을 먹고 나서는 내 병실을 열어줬고 나는 샤워를 마친 후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 아니 누군가 나를 깨웠다. 몸을 일으켜보니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서계셨다. 


"잘 잤니?"


"네.."


"좀 어떠니?"


"괜찮아요"


"그럼 나랑 얘기할 수 있겠니?"


"네 좋아요"


의사 선생님은 여자분이셨고 나이가 좀 있어 보였다. 나는 그분을 따라 어느 한 방에 들어갔고 거기는 진료받는 곳이었다. 선생님은 키보드에 손을 올려두시며 내게 말을 걸었다.


"요즘 좀 어떤 거 같니?"


"음..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구나. 아빠가 면회 오셨는데 네가 업히는 모습을 보며 조금 놀랐단다"


"맞아요.. 사실 제 슬픈 연쇄 고리를 아빠가 끊어준 느낌이었어요"


"그랬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니?"


"그럼요. 저는 슬픔에 잠겨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여기 지내고 아빠를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면 아빠가 제 슬픔의 안개를 걷어준 거 같아요"


"좋은 징조구나. 왔을 때보다 표정이 좀 더 밝아졌고 너만 괜찮다면 퇴원하는 건 어때?"


"좋아요 저는 집을 가고 싶었거든요"




제 입원 일기는 여기까지로 길지 않습니다. 조금 추가 설명을 드리면 거기는 유럽 병원이었고 정신병동이긴 했지만 일반 병동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통제가 있는 부분은 병실 내에서만 활동해야 한다는 부분인 것인데 코로나 이후 대학병원에 있는 일반 병실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오히려 중환자실이 통제가 더 심합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고정관념과 편견이 많은 만큼 다른 질환들보다 입원하기를 많이 꺼려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아무나 입원할 수 없고 보호와 관찰이 필요한 분들만 입원이 가능합니다. 만약 의사가 입원을 추천드리면 거절해도 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만 사회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숨고 싶어서 입원하는 것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괜찮다는 거짓말을 했다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들은 제 거짓말에 속으신 게 아닙니다. 혹은 제가 저를 속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의사 선생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퇴원 후에 생활이 위험할지 안 할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기준점 이상이 될 경우 퇴원 수속을 합니다. 


병원은 말 그대로 관찰과 치료하는 곳입니다. 환자가 일반인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과 치료가 필요하고 결국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저처럼 제가 스스로 사회로 돌아간다는 의지가 보이면 오히려 좋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의견을 존중해 줍니다. 물론 지금보다 더 힘들다는 것도 알지만 그것 또한 환자가 극복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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