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중에서 현재 캐나다는 이민자에 대한 가장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아프간 난민들에서부터 우크라난민에 이르기까지 난민들을 수용하는데에도 적극적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캐나다 사상 첫 골을 안긴 알폰소 데이비스는 가나 출신의 난민이었고, 실축에도 비난이 아닌 위로를 전하는 캐나다의 문화를 보면 여기가 진정한 '아름다운' 다문화의 공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국경의 허들이 낮은 만큼 캐나다는 우리에게도 어학연수지와 워킹 홀리데이, 혹은 유학과 이민의 목적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대학재학중에 어학연수를 와서 처음 알게 된 예전의 밴쿠버에는 한인 식당이 두 개 정도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한인 커뮤니티도 그 때에 비해 상당히 커졌고, 조기 유학생을 포함해서, 학업을 위해 오는 사람들도 이민자들도 제법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캐나다가 유학지로 적당한가?' 혹은 '캐나다 이민은 괜찮은가?'에 관해서는 정답이란 것을 말할 수는 없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삶은 즐겁습니까?" 만큼이나 열려있고 개인의 위치와 맥락에 달려있다.
예전에 출판되었던 캐나다 이민에 대한 초기 저술물인 "캐나다 이민 절대 오지 마라"는 상당히 많이 팔렸던 책으로 기억을 한다. 오래되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과거는 두 나라의 소득과 생활 수준 격차가 상당해서 이민을 오는 것이 매력이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발전한 현 시점에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이민을 와야하는 이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정도 였던 것 같다.
내가 이십 여년을 했던 일들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또 운이 좋게 영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며 박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생활방식과 문화에도 관심이 안갈 수 는 없다.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는 여기 오기 직전 한국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고, 현재는 이곳에서 조교로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이들의 답안을 직접 체점하기 때문에 두 나라의 교육 차에 대해서도 직관적으로 비교가 되기도 한다.
이곳 교육 제도라는 것이 밖에서 보면 동경의 대상이지만, 막상 자신의 아이가 걸린 문제라면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내가 경험한 제헌적인 바운더리 안에서 지극히 주관적으로 캐나다 이민과 교육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생각나는 대로 남겨 본다.
1. 유학지로서의 캐나다
캐나다 교육은 교육청 별로 그리고 유학 시기별로 제법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내신만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캐나다 교육은 밖에서 보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하지만, 계속 정주를 할 영주권자 나 시민권자가 아닌 이상, 대학 이후에 어디에 터전을 잡을 것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또한, 답안 체점을 할 때 결국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아이들은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위해 고도로 훈련이 된 한국과 중국학생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캐나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교육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떨어지고 학교가 보육원 수준 정도라고 불평하는 목소리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캐나다 교과서 개발이 적은 학업인구로 인한 수익성의 문제로 쉽지가 않다고 말하는 학교 선생님의 설명, 그리고 학교의 낡은 교재들을 보면, 괜히 한국에서 공부를 잘하던 애를 빼내서 내가 바람을 집어넣고 흔드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캐나다 대학 퀴즈 시간
이런 종류의 고민은 물론 입시라는 것이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고등학생 근처에서의 문제일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라면 사실 어느 나라에 가서 영어를 배우고 돌아가도 역적응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밴쿠버는 아시아 인구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 점이 장점(적응이 쉽다)이자 단점(학교에서 한인 바운더리 안에 있기 쉽다)이 된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던 영국 초등학교에 비하면 이 곳은 아시아 국제학교로 보일만큼 아시아 비중이 제법 된다.
여기 학교가 세시 반에 끝나지만, 그 이후가 한국 학원 코스처럼 구조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가 학교생활의 관건이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 하고자 하는 뚜렷한 주관도 있고 사회활동을 향한 많은 에너지와 열정이 있었는데, 입시구조 속에 틀어박힌 것에 불만이 있는 학생들은 이 곳 교육이 잘 맞을 수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이 오롯이 개인의 것이다 보니, 한국에서 샛길로 빠지던 친구들은 오히려 이런 느슨한 환경이 독이 될 수 있다. 학교가 끝나고도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 있고, 활동량이 많은 친구들은 더욱 빛이 나는 구조이다.
고등학교 재즈밴드 크리스마스 공연
하지만, 한국적인 시각에서는 분명 학습량이 학국에 비해 많이 모자란다. 그래서 여기 처음 도착해서는 캐나다 입시와 한국의 입시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학교를 통해 그리고 사설학원을 통해 미국 입시를 준비하는 트랙도 있지만, 졸업 후 체류 조건 등에서 캐나다 보다 불리한 점도 있기 때문에, 진로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는 선듯 준비를 하라고 하기도 어렵기도 하다. 이곳에서 만나서 좋은 자리를 잡고 사는 젊은 친구들은 함께 유학반에서 준비해서 미국에 간 친구들은 비자 문제로 거의 한국에 돌아갔다고 말하며 본인의 캐나다 선택에 대해 만족을 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은 한국에서 미국 대학을 치열하게 준비하는 학생들과 한 트랙에서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아주 빡빡한 일정으로 되돌아 가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 대학으로의 유학은 영주권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있기 때문에 매력이 있어 보인다. 현재 기준으로는 이곳에서 대학 정규 과정을 마치면 3년 간의 워크퍼밋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공립 중심으로 발전한 캐나다의 대학들은 미국 학교에 비하면 등록금도 저렴한 편이다.
한국이든 캐나다건 혹은 영국이든 미국이든,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란 것이 국경과 상관없이 사실 큰 내용적 차이를 보일 수 없다. 한국에서 잘 하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와서도 여기 의대 진학을 하는 것을 보았다. 유학에서 가장 좋은 케이스는 자기 하고자 하는 바도 분명했지만, 입시구조에 꾸겨져 넣었을 때 힘들어 하던 학생들인 것 같다. 이런 친구들은 자율의 시간을 많이 부여하는 이 곳 교육에서 잘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여행과 이민은 분명 다르다
2. 이민의 목적지로서의 캐나다
나는 10년을 여행하고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나와서 반 발 정도는 이민 고민에서 빠져 있다. 코로나 이후 은퇴자가 급증했듯이, 인생이란 것이 한번이라면 이런 도전 즈음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민을 꿈꾸는 외국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모르는 곳에서 터전을 잡는다는 것은 상당히 수고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민에 관심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아직까지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오기 전에 유학 이민 박람회를 많이 가봤었고, 몇몇 업체에서 제공하는 쉬운 이민 프로그램이란 것이, 특정 업소에 묶여 있는 폐쇄형 워크퍼밋을 조건으로 거는 경우를 많이 봤다. 좋은 분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안좋은 케이스를 경험한 분들은 이렇게 막상 나와서 영주권을 따기위해 자진해서 착취를 당하고 정착에 실패하는 경우도 왕왕 보고 듣곤 한다.
이런 조건이 아니더라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가에서 새롭게 정착하는 게 쉬운 과정일 수만은 없다. 기자로서 세계 곳곳에서 취재를 하면서 교민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는 했는데, 더 윗세대로 갈수록 고생없는 '성공서사'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것 같다.
이민에는 저마다의 서사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흔히 거론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개인의 삶이 없는 근무환경, 경직된 노사문화, 위계적 사회, 낮은 임금, 높은 집값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일했던 일터의 기준으로 보면 여기의 근로조건이 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의무 연차를 포함해서 두 달 이상의 휴가를 쓸 수 있었고, 직장에서 받던 월급도 여기 교수 월급보다 많았다. 그리고 복지제도 역시 한국에서 받던 것들이 여기 없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는 모든 서비스와 재화들이 계량화가 되어 있다 보니, 한국에서 받던 '선물' 같은 복지제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명절날 나오던 상품권, 대학원 지원, 자녀 학자금, 문화생활지원비, 콘도 지원, 연말 인센티브, 퇴직금 등등 일할 때 받던 혜택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서 주말에도 나와서 앉아있는 은행원들이나, 월급면에서도 부족해 보이는 여기 사무직군들의 근로환경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기 월세는 2베드룸 기준으로 월 300만원 이상에 이르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사는 것이 팍팍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무료이다. 이곳은 돈을 쓰지 않아도 소확행을 주는 공간이많아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한국에는 그런 좋은 조건들을 보장하는 일터가 아주 제한적이고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조직 문화 역시 아쉬울 때가 많다
사내외에서 감사와 주목을 받는 회사라면 정도는 덜 할 수 있겠지만, 회사 조직 문화 역시 사람에 따라, 조직에 따라서 체감하는 수준 차가 많이 난다. 사회 구조 뿐아니라 성별에 따른, 학교에 따른, 소득에 따른 문화와 대우의 차가 한국사회에서는 보다 선명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했던 한 대기업의 성희롱 가해자는 징계위원회에서 '별 것도 아니네'란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중에 그 회사 관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상황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여기에 적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내 청춘의 무덤. 치열했던 공간. 나오면 모든 게 아름답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결국은 인간의 존엄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중산층의 두께와 수준이 그 나라가 살만한가를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캐나다를 보면서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 세계 13위에 드는 경제강국이지만, 근로자의 권리는 93위 수준이다. 결국 노동을 갈아넣어 경쟁력을 만들지만, 노동의 합당한 댓가를 받는 자리는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것이, 세계 10위의 경제규모에도 불구하고, 살아 가기 팍팍한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노동을 보는 미디어의 시선 역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다.
그렇다고 이민은 팍팍한 생활과 문화적 호불호로 무턱대고 지를 수는 없는 중대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준비없이 중산층으로 편입하기도 쉬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고, 미래를 준비할 도구가 있느냐가 중요한 키가 될 것 같다. 한국에서도 생계가 가능한 기술이 있는 경우라면, 여러 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다. 최저 임금이 1.5배 정도 높고, 팁문화도 있기 때문에 기술 노동자들이 벌 수 있는 임금 수준은 분명 이곳이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사무직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1세대가 걸었던 엔트리 노동시장으로 진입을 유도하는 이민 문화는 분명 부담스러워 보인다. 미래가 무정형인 청년들에 비해 일을 하다가 이민을 하는 분들은 자신의 형태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그래서 자신이 꿈꾸던 일로의 전직이 아니라, 밥벌이를 위한 노동의 수단으로서의 전직이라면 당연히 하드랜딩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발전을 했기 때문에, 사무직과 전문직 기준으로도 이곳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처럼 고등교육자가 넘처나는 시장과 다르게 인구가 부족한 캐나다는 비숙련 뿐 아니라 숙련 노동 및 전문직도 부족하다. 그런 분들은 이민자들이 주종을 이루는 힘든 엔트리 노동 직군으로 몰려가는게 아니라 영어 공부를 해서 자신의 일의 연속성을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싶다.
지난 2년간 캐나다 아카데미아를 경험을 해보니, 한국에 비하면, 지식 노동에 대한 환경과 대우가 나쁘지가 않았고, 학교에 있다 보니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비교적 안전하고 만족스럽다. 예를 들어 대졸자들은 기술학교 보다 대학원을 진학 하는게 유리한 것이, 캐나다의 대학원생들에게는 입학조건에 장학금 및 학교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조교 등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것 말고도 학교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그런 종류의 일들은 학교 바깥에서 돈을 버는 것에 비해 일의 강도나 시급 면에서도 유리하다. 이렇게 진학을 할 경우, 배우자는 오픈 워크 퍼밋을 받을 수 있고, 자녀는 무상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 운이 좋게도 한국에 주택이나 안전한 재테크의 수단이 있다면 전세나 월세. 혹은 기타 방식으로 융통한 돈으로 생활비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면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훨씬 덜 할 수 있다. 한국보다 교육비나 기타 경비는 확실하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 국가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여기에 비하면 엄청난 노력과 열정으로 살아온 시민으로서, 상황에 의해 하던 일과 삶을 내려 놓는 방식의 이민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 도전하는 도전의 땅으로 캐나다를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자신이 했던 일과 유관한 일을 더 밀고 나가는 방향으로 간다면, 만에 하나 한국에 귀국하는 경우라도 손해보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명백히 이 땅의 주인은 나다라고 배타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영국과 미국에 비해서는 확실히 이곳은 더 개방적인 곳이다. 이민자끼리의 대화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상 언어도 이들 나라에 비하면 더 관대할 수 밖에 없다.
캐나다 대학 수업 광경
결국 이민이라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곳으로의 이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 대한민국의 시민은 여러 난관을 뛰어넘는 체험을 집단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해왔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민에 관심 있다면, 자신이 해오던 일을 놓는 선대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을 발전 시키고 더 좋은 생활 조건을 찾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P.S. 오늘도 낯선 곳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