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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Apr 16. 2023

미래 교육과 근로시간

캐나다에서 생각해 보는 삶의 조건


학교에서 서둘러 돌아오는 길.


내가 사는 곳에는 퇴근시간 버스 전용차선이 3시 반에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정말 4시면 퇴근하는 사람들과 길에서 만나고 정체가 시작된다.


하던 일이 뉴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보니, 주말을 포함해서 큰 사건이 일어나면 정말 퇴근이 없이 일을 하곤 했다. 친구도 만나고 싶고, 연예도 하고 싶고, 여가도 즐기고 싶고, 친구들과 여행도 하고 싶은 젊은 나이를 그렇게 보냈다. 그래서 아직도 여의도의 옛 사옥 터를 지날 때나 상암동에 거대하게 빛나는 옛날 회사를 보면 내 청춘의 비석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하지만 회사를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내가 경험한 것들은 정말 사치스러운 것이었구나 싶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있다보니 주 5일제도 빠르게 정착을 하였고, 비록 주말근무를 달고 살아야 하는 숙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덕분에 휴일 수당이 상당히 나오는 편이었다. 대부분 이런 것들은 선택된 회사들의 일들이다. 회사 밖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배우겠다고 가서 만나 본 어떤 개발자들은 일년 내내 거의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도 있었고, 하청에 더 하청으로 내려갈 수록 근로조건은 곱절로 나빠진다는 것도 듣게 되었다.




그런 경험 뒤에 이 곳에서 3시에 퇴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황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곳이 서울보다 더 크고 훌륭한 기업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생활이 되도록 설계된 제도적 측면에서 나온다.


코로나 이후 높아지는 물가와 이미 오른 집값의 문제는 다르지않으나, 진입이 쉬운 파트타임 일자리의 노동강도와 페이가 한국과 비교해서는 많이 좋은 편이다. 최저 임금이 50% 정도 높다보니, 근로 시간이 길어질 수록 차이가 제법 난다. 우리나라의 복지비는 G20 국가들중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


Deep Cove, Vancouver


그 차이는 생활을 해보면 확연히 나타난다. 영주권자가 아닌, 외국인 학생에게도 적지 않은 혜택이 돌아온다. 매달 나오는 아이 보육비는 물론 이거니와, 소득이 낮기 때문에 일 년에 몇 번씩 각종 세금이 환급되어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이런 생각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시 듣게 된 것은 얼마전 런던 소아스 대학교 장하준 교수가 <경제학 레서피>란 을 소개하는 방송에서 였다.


"3만불이 넘는 국가에서 노동집약적인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게 시대에 맞지 않는다"


"가난하든 부자이든 모든 인적 자원을 최대로 뽑아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국가의 케어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학생들은 이곳에서도 우수한 재원들이지만, 한국학생들의  학습량은 노동환경과 그대로 닮아있다.


그리고, 사교육에 맞겨진 학생들은 서로 섞이기도 어려울 뿐더러, 입시의 성격상 자원의 왜곡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인구도 줄고 있는데, 재능 있는 학생들이 가난에 희생되는 구조로는 답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지나치게 미화되고 당연시 되어 있다.


군 생활을 할 때 최상급 부대의 상황실에 있다보니, 큰 사고가 터지면 3일까지 잠을 못자고 상황실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걸 '정신'으로 포장하고, 몸이 갈아가며 청춘을 이끌던 그 분들중에서 장성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결국 그 결과가 그러했다면, 누군가의 삶을 그렇게까지 몰고가서 얻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우리는 혹시 그것 밖에 길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관광진흥책도, 출산대책도, 청년대책도,


근로자들의 재교육도  


시간이 주어져야 될터인데,


밤중에 퇴근해서


여러 모임에서 겨우 얼굴만 보고 나왔던 과거의 경험은,


피곤함을 늘 달고 놀았던 기억은,


정말 뜨겁고 추억 가득하지만,


이런 처절한 방식의 삶은


더 이상 다음 세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뜨거움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눌러 찍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모두를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수 있는


이 곳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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