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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Aug 17. 2023

#13. 10년 친구에게 손절당하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너의 모습만 봤고, 너는 “너”를 말하지 않았기에

초등학교 때 인생 첫 배신을 당한 이후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속으로 “제일”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소희는 지금까지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착한 사람이었다. 소희와 나는 서로의 어둡고 힘겨운 중학교 시기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했다. 

부모님도 모르는 나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했던 유일한 사람이자 치기 어렸던 내 꿈을 응원해 줬던 친구였다. 같이 사는 가족보다 때론 더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자주 전화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꼬박꼬박 만나며 관계를 이어 나갔다. 

그나마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서로 같은 동네에 거주했기에 자주 만났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며 이제는 각자 다른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약간의 거리가 생기긴 했다. 그래도 누군가 내게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스스럼없이 소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여전히 내겐 나를 제일 잘 알고 편한 친구가 소희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소희 역시 평생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 처음 만나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우린 작은 말다툼 한번 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친구와는 어쩌다 싸우기도 하고 의견 충돌이 있어 서로 서운한 감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내 기억에 소희와는 단 한 번도 싸웠던 적이 없었다.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너그러운, 단 한 번도 삐지거나 화난 모습조차 본 적이 없던 친구였다.

그래서였나 보다. 

내가 계속 내가 보고 싶은 소희의 모습만을 보고 있었기에 소희의 변화를, 소희가 보내는 감정의 시그널을 나는 잘 캐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고향에 내려가 소희를 만나면 소희가 눈에 띄게 말을 하지 않는 게 느껴졌다. 그게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 지냈냐고 너의 이야기 좀 해보라고 하면 자기는 그냥 늘 똑같이 지낸다며 나와 다른 친구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기만 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원래 말이 많던 친구는 아니어서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었다. 


이제는 소희가 그저 우리 이야기를 듣고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고 있는 게 더 익숙해졌던 어느 날. 

갑자기 소희가 우리들끼리 마시고 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대화 중 기분 나빴던 게 있었던 건지 전전긍긍하면서 계속 연락해 봤지만 받지 않았다. 


허무하게도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소희는 이후로도 우리의 연락을 계속 받지 않았고 몇 달 후에 오랜만에 메신저에 접속해 있길래 말을 걸었다.

나는 소희에게 화가 나는 게 있고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고 풀자고 이야기했지만 소희는 너네는 어떻게 번번이 사람 앞에 앉혀놓고 그렇게 무시를 할 수가 있냐고 우리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10년 넘게 친구인데 어떻게 그래 서운한 게 있음 미안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만

소희는 10년 우정 별거 아니던데? 나는 지금이 더 편해라고 이야기했다. 


깨지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다. 내 마음 마지막 조각의 주인은 소희였다. 

회복 가능한 유연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았으련만...

한동안은 정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괴로웠고 한번 더 이런 상처를 받으면 나는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깨진 마음의 조각을 치우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소희를 지우기로 했다. 

그렇게 10년 친구에게 손절을 당했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다 사라지진 않았다. 

내가 다시 먼저 연락을 해볼까 수십 번을 망설였고, 번호를 알 수 없는 부재중 전화에 소희의 연락은 아닐까 하며 한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하곤 했었다. 

그렇게 5년쯤 지났을 때였다. 

계속 무언가 맘에 걸리는데 분명 무언가 잊고 있는 거 같은데 그 막연한 기분조차 곧 잊어버렸던 날. 

한참 후에 나는 그날이 소희의 생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내 기억의 유통기한은 딱 5년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친구였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그날 이후 다른 친구에게 소희의 소식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소희의 모습을 이야기하길래 나는 한번 더 내가 소희라는 사람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구나, 정말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을 보고 있었구나를 깨닫고 뒤늦게 소희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너라고 받아들이는 모습뿐 아니라 정말 너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주려고 노력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친구였을까?... 

내 아픔과 상처가 희미해져 가면서 소희에 대한 기억도 빠르게 사라져서 이제는 그 아이의 얼굴도 가물가물해졌다. 


더 이상은 깨질 마음도 남아있지 않고, 그리고 이제 와서 다시 너와 친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한때나마 너의 생일은 나에게도 굉장히 특별한 날이었고 그날에 태어난 너도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었다.

네가 지금 어디서 어떤 인생을 살고 있건 간에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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