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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아버지, 마음 속의 아버지

아버지의 외모 뿐만아니라 삶의 가치를 닮아 간다.

by 꿈꾸는 철이

독족굴의 산밤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삶과 나의 삶,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생명의 증거다. 고향 을 인근의 독족굴에는 밤나무가 무성하다. 모두 산밤나무다. 이곳이 밤나무로 가득하게 된 것은 30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께서는 독족굴의 야산에 800그루의 우량종 밤나무를 심으셨다. 그 나무들은 잘 자랐고,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가을마다 온 가족이 밤밭에서 알밤과 밤송이를 줍느라 바빴다. 사실 매주 주말마다 밤을 주우러 가는 일이 어린 나에겐 지겨웠다.

그때 심었던 밤나무는 수명을 다해 사라졌지만, 지금 무성한 산밤나무는 아버지가 심은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 자라난 후예들이다. 우량종일 때는 사람의 돌봄이 필요했지만, 산밤나무가 된 지금은 돌봄 없이도 독족굴의 우세종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척박한 산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이 나무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흔적이 느껴진다.

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 변변한 전답 없이 소작농으로 생계를 꾸리셨다. 고향마을에서 태어나 40대 중반까지 논밭을 일구시며, 계절에 따라 누에를 치는 일 등을 하셔서 동네에서 부자 소리를 들을만큼 경제적인 자립을 하셨다. 그러다 가족을 이끌고 인천으로 이사하셨다. 안정된 직장 없이 공사장 노무자, 초급 목수로 일하며 힘겹게 생계를 책임지셨다. 시골에서 도시 노동자로의 전환은 결코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사 후 4~5년이 지나 구청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하셨고, 그 후 10여 년간 근무하시며 안정을 찾으신 뒤 퇴직 후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독족굴의 산밤나무처럼 아버지는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비바람과 경쟁을 이겨내며 자란 나무처럼, 아버지도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며 굳건히 버텨오셨다. 그 모습은 깊은 뿌리와 강한 줄기를 지닌 산밤나무와 다르지 않다.
중년이 되어 거울을 보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눈, 코, 입은 아버지를 닮았다. 얼굴 윤곽은 어머니를 더 닮은 듯하다. 형은 우리 형제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 거울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할 것 같다. 사람들은 나도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형제의 얼굴이 점점 비슷해지고, 아버지의 모습을 더 닮아간다고 한다. 언젠가 나도 거울을 보며 “아버지가 거울 속에 계시네”라고 느낄 날이 올지도 모른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태도와 성향이 아들에게 이어진다는 뜻이다. 나의 삶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이 묻어난다. 식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에서 아버지의 근면함과 창의성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아버지는 본업인 농사 외에도 누에를 치고, 담배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다각화하셨다. 집 주위에 감나무가 없던 시절, 밭에 고염나무를 심고 접붙여 우량종 감나무를 키우셨다. 1만여 평의 임야에 밤나무를 심어 밤밭을 일구신 것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26세에 취직해 30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맡은 일을 치열하게 감당하며 살았다. 30대 중반에는 주말도 없이 야근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도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다. 업무 능력을 높이기 위해 컴퓨터 자격증을, 퇴직 후를 대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40대에는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직장 내 직무 강의를 2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8년 전부터는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 등록 강사로 외부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아버지의 근면함과 창의성은 내 삶에도 투영된다. 아버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혁신적으로 살아오셨다. 나 역시 본업에 충실하며 새로운 성장을 모색해왔다. 몇년 전 2월, 쉰두 번째 내 생일에 큰딸 아영이가 보낸 축하 메시지를 보며 깜짝 놀랐다. “아빠가 평생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저도 열심히 사는 어른이 됐어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 글은 내가 아버지께 가끔 했던 말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외모뿐 아니라 삶의 가치를 닮았다. 내 자녀들 역시 나의 외모와 삶의 태도를 물려받는다. 독족굴의 산밤나무가 세대를 이어 자라듯, 아버지의 삶은 내 안에, 내 삶은 아영이와 서영이에게 이어간다. 두 딸이 내 나이쯤 되었을 때 거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나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할까? 아영이의 메시지처럼, “아빠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살아갔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내가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하듯, 독족굴의 산밤나무가 후대에 뿌리를 내리듯, 우리들의 삶이 선하고 아름답게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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