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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thingbut Nov 10. 2023

찹쌀떡을 먹는다는 일

가을이면, 냄비밥을 짓는다.


불린 햅쌀과 물을 중간 크기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아 끓인다. 냄비 뚜껑이 바글바글 들썩이기 직전에 뚜껑을 열어야 한다. 넘치기 바로 직전에 그 일을 해내면 뿌듯하다. 주의를 기울인 만큼 밥이 더 맛있어질 것 같기도 하고, 냄비밥을 지어먹고 가스레인지를 닦아내야 하는 불상사를 막은 것 같아서 그렇기도 하다.


중불에서 약불로 줄여가며 냄비 앞을 지키다 보면, 물기가 없는 쌀알들이 '타닥타닥' 엔딩을 알린다. 쌀과 불로 밥을 지으면,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을 때와 달리 유달리 소리가 많다. 


오분 간 뜸을 들인 냄비의 뚜껑을 열면 밥이 된 쌀알들이 뽀얗다. 주걱으로 그것을 한 공기 덜어서 별 것 없이 먹는다. 김에만 싸 먹어도 맛있는 밥이 가을 밥이다.

계절의 사분의 일 정도는 수고로워도 냄비밥을 짓는다. 쌀과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을밥 못지않게 쌀의 맛있음을 알게 해 준 고마운 것이 하나 더 있다. 찹쌀떡이다.






나와 남편은 코로나시대의 자영업자였다.


처음 해보는 장사도 충분히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한 것은 감출 수 없는 불안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다는 기약 없는 코로나는 야금야금, 나의 인내와 열정을 앗아갔다. 애써 품는 낙관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길게 이어졌고, 우리는 결국 문을 닫았다. 배달에 적합한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 결정적이었고, 지쳐버린 마음을 수습해야 하기도 했다.


우리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이사도 그중 하나였다. 지방으로 거처를 옮겨 여유금을 만들 요량이었다.


돈은 없어도 시간은 많았기에 우리는 차를 타고 살만한 곳들을 직접 둘러보러 다녔다. 가게에만 묶여 있다가 돌아다니니 즐겁기도 했다.


여러 군데를 전전하다 충청도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나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이사에 필요한 요모조모를 따져보았다. 미용실을 걱정하기도 했다. 쿵짝이 잘 맞는 헤어디자이너를 찾는 것은 난제에 가까웠다. 늘 그랬다.


그밖에는 별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어떤 기억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내 한 가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찹쌀떡이었다. 이사를 가면 더는 그것을 먹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말하는 찹쌀떡은 제과점에서 흔하게 보이는 것과 사뭇 달랐다.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아서 당일날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얼려둬야 했고, 주문도 전날에 전화로 해야 했다. 번거롭기 그지없기 때문에 나도 처음에는 구매를 망설였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계획이 무산된 적도 두어 번 있었다. 하지만 궁금증이 게으름을 이겨냈고, 나는 드디어 찹쌀떡을 한 입 베어 물 수 있었다. 


놀라웠다. 엉덩이처럼 포동포동한 흰 떡 부분이 가운데 든 팥앙금보다 더 달았다.


쌀의 단맛이었다. 


노상 먹는 흔하디 흔한 밥을 여태껏 먹어왔으면서도 나는 쌀의 참맛을 몰랐던 것이었다. 어느새 찹쌀떡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만일 예술의 전제가 친숙한 것을 달리 보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 찹쌀떡은 분명 예술이었다.


이것을 더는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난데없이 슬퍼지기도 했다. 남편도 나와 같았는지 운전대를 붙잡은 와중에도 찹쌀떡 사 먹을 궁리를 했다. 

자주 갈 수 없다면 급속냉동으로 얼려야 최대한 제 맛일 날 가능성이 높았다. 드라이아이스며, 아이스 박스며, 차가 밀리지 않는 시간대며,…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상황을 머리에 그려냈다. 떠들어댈수록 뉴스에 연일 보도되던 백신 수송작전과 유사하여서 웃기기도 했지만, 그렇게라도 찹쌀떡을 먹을 있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그런 것을 좋아했다. 대부분이 대량화되고 기계화되며 유통에 용이한 자세를 갖추어 가는 시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질을 지켜낸 맛 같은 것(여담이지만, 장사가 망한 데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 여차저차 이사를 가지 않았고, 나는 가을이 오면 찹쌀떡을 사 먹을 계획을 세운다. 


눈으로도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의 미닫이 문을 쓱 밀고 들어가면, 할머님 두 분이 어김없이 손으로 오동통한 떡을 빚고 계실 테다. 나는 세상의 흐름과 무관히 견지해 온 말랑말랑하고 달고 포근한 세계를 맛볼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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