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ythingbut Dec 08. 2023

모른다

아쉽게도 나는 세상 많은 것들을 모른다.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우는 주인 곁에서 몽롱한 표정을 짓는 골든레트리버의 심정을 모르고, 때때로 어긋나는 가까운 이의 심정을 모른다.


그 밖에도 나는 외계인이 유무도, 진행 중인 사랑의 결말도, 죽을 날도, 여행일정을 잡아둔 어느 주말의 날씨도 모른다.


안다고 믿어왔지만 그렇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태반이 나 자신에 관련된 일이었다. 나는 간밤에 꾼 다소 엉뚱하고 요란스러운 꿈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알고 싶은 게 꽤나 많았다.


버스정류장과 안경집 사이에서(흡연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종종 마주치는 간접흡연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면 바바리코트를 입은 듯 고독해 보이는 커다란 강아지가 흡연에 관한 자신의 마음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만 같았다. 골든레트리버는 갓난아이를 돌볼 만큼 유순한데 자신은 남다르다고. 그 일이 내심 걸렸는데, 애연가 주인과 살다 보니 스스럼없이 그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보다는 같이 사는 그 사람이 싸울 적마다 무슨 마음인지도 궁금했다. 미안한데 멋쩍은지, 정말로 내가 미운지. 


그나마 외계인에 관한 것은 명료했다. 


어릴 적부터 물컵에 물이 반이든 걸 보면 그저 반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반이네 혹은 반밖에'하는 의미부여가 (글쎄) 탐탁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저 멀리에도 생명체가 살 수 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외계인에 대한 나의 입장이다.


물론 외계생명체에 관한 상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왕이면 맨인블랙에 등장하는 예측불허의 다양함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나의 바람과 달리, 그 존재는 모델의 가까운 비율에, 윤이 나는 피부에, 반듯한 이목구비를 지닌 - 누구라도 시각적으로 빠져들만한 - 모습이라서 외계생명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결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진행 중인 사랑은 쉽지 않다. 시작과 끝에 비하면 중간은 다소 어리둥절한 데가 있어서, 어쩔 땐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쩔 때 그렇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선명한 인장으로 쿡 찍어낸 듯 분명하기를 바라지만, 겪어본 사랑들은 대체로 희끄무레 나를 약 올렸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나는 죽은 날짜를 알고 싶은 쪽이다. 일정에 맞추어서 재산을 탕진할 의향이 얼마든 있기 때문이다. 통장의 잔고 따위 걱정하지 않고 쓰는 돈은 도대체 무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그것이 부자의 마음일까). 


아무튼, 산다는 일에 제법 필요한 것은 여행날의 날씨다. 떠나기 위해 필수적인 숙소의 예약이란 게 보통 치열한 게 아니다. 단거리 선수에 준하는 반사신경으로 마우스를 클릭해야 한다. 그러니 여행날의 날씨는 좋아야 좋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모르게 되었을 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서 얻는 값진 훈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늘 치명적이었다. 갈 곳 잃은 돛단배처럼 표류하게 되는 탓에 두서없고, 감당이 되지 않아서 깊숙이 밀어둔 감정인 탓에 매서웠다. 


아마도 나는 또다시 무력한 사람처럼 '모른다'는 말을 반복할 테다. 세상에는 결국은 모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게 된 어떤 마음들과 어떤 소소한 사실들은 소중히 간직한 채로 모른다는 말을 반복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AI’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