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수줍은 표지 산책] 산울림 2집
'내가 김창완과 일을 같이 하다니!'
'내가 산울림과 얘기를 하다니!'
2016년 여름,
클래시로얄 촬영 전 날은
소풍 전 날 같았다.
꾸려놓은 가방 옆에는
사인을 받기 위해
어릴 적 사놓았던
빛바랜 '산울림 2집'을 챙겨 두었다.
십 대 후반 나에게
산울림은 산이었고 신이었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
친구가 '형이 듣는 노래'라며
녹음테이프 하나를 건넸다.
제목도 모른 채 심드렁하게 플레이를 눌렀다.
단조롭지만 그루비한 베이스 리프가 시작되었다.
그 뒤를 단조롭지만 경쾌한 드럼이 합세했다.
이윽고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낸 단단한 틀을
기타가 마구잡이로 휘젓고 다녔다.
견고한 캔버스에 마구 흩뿌려지는 '잭슨 플록'의 물감들처럼.
몇 곡 들어보았던 미국 사이키델릭 밴드인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다른 곡인가 싶었다.
근데, 뭐랄까 한 술 더 뜬 느낌이었다. 더 날것이었고, 제멋대로였다.
한참을 카랑카랑하게 노니던 기타는 디스토션을 풀고 리프로 이어졌다.
기타 리프 또한 이펙터를 입혀 몽롱하고 나른했다.
그리고 갑자기
정말 난데없이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목소리에
익히 알고 있던 노래의 첫 소절이 튀어나왔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아니, 어른들 흥얼거리는
유행가인줄만 알았던
노래가 이런 노래였어?
눈이 똥그래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놀란 마음에 친구 쪽으로 돌아보니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날
꿈이 생겼다.
서울대 가서
사이키델릭 밴드를 해야지
물론
금방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