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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순 Apr 03. 2023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수줍은 표지 산책] 산울림 2집

'내가 김창완과 일을 같이 하다니!'

'내가 산울림과 얘기를 하다니!'


2016년 여름,

클래시로얄 촬영 전 날은

소풍 전 날 같았다.


꾸려놓은 가방 옆에는

사인을 받기 위해

어릴 적 사놓았던

빛바랜 '산울림 2집'을 챙겨 두었다.


십 대 후반 나에게

산울림은 산이었고 신이었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

친구가 '형이 듣는 노래'라며

녹음테이프 하나를 건넸다.

제목도 모른 채 심드렁하게 플레이를 눌렀다.

 

단조롭지만 그루비한 베이스 리프가 시작되었다.

그 뒤를 단조롭지만 경쾌한 드럼이 합세했다.

이윽고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낸 단단한 틀을

기타가 마구잡이로 휘젓고 다녔다.

견고한 캔버스에 마구 흩뿌려지는 '잭슨 플록'의 물감들처럼.


몇 곡 들어보았던 미국 사이키델릭 밴드인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다른 곡인가 싶었다.

근데, 뭐랄까 한 술 더 뜬 느낌이었다. 더 날것이었고, 제멋대로였다.

한참을 카랑카랑하게 노니던 기타는 디스토션을 풀고 리프로 이어졌다.

기타 리프 또한 이펙터를 입혀 몽롱하고 나른했다.

그리고 갑자기

정말 난데없이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목소리에

익히 알고 있던 노래의 첫 소절이 튀어나왔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아니, 어른들 흥얼거리는

유행가인줄만 알았던

노래가 이런 노래였어?


눈이 똥그래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놀란 마음에 친구 쪽으로 돌아보니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날

꿈이 생겼다.


서울대 가서

사이키델릭 밴드를 해야지


물론

금방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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