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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 Dec 06. 2019

이제서야 깨달은 아빠의 마음

아빠의 삶의 원동력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밥 한 끼였을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 해외여행 안 가봤으니까 내가 보내주고 싶어서 알바한다!"




대학교 1학년 여름, 우리 아빠는 올리브영에서 알바 하느라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나를 매우 혼냈다. 대타 때문에 고작 3주 동안만 늦게 귀가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할 거냐는 아빠의 물음에 '엄마 아빠 해외여행 보내주려고 알바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우리 아빠는 딸의 이런 갸륵한 마음보다는, 주말에라도 온 가족이 한 데 모여 한 끼 식사를 함께 하는 게 중요했다. 우리 아빠는 내가 밤 12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오는 것도 걱정되고 화가 났지만, 평소에도 주말 알바를 마치고 10시를 훌쩍 넘겨서 들어오는 탓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이 싫었던 것이다.




이후 아빠의 영향과 더불어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주말 알바는 거의 안 하게 되었다. 가끔 하는 단기 알바와 격월로 시간대가 로테이션되는 맥스라이더에서의 8개월뿐. 자연스럽게 가족들과의 식사 횟수도 늘어났다.




그러나 나는 '나만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마음에 쓰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재학 당시 구청에서 몽골 해외봉사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60만 원을 들여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 집 형편에서 60만 원은 꽤 큰돈이었음에도 새로운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라며 기꺼이 보내주셨다.




이를 시작으로 나는 대학교 진학 후 단과대 프로그램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홍콩/마카오,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캐나다, 미국, 일본을 여행했다. 특히 캐나다와 미국 여행은 용돈을 받으며 일을 했고, 부모님께 경비의 절반을 지원받았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내 마음은 더 무거웠다. 엄마, 아빠의 희생으로 내가 행복했으니까.




엄마, 아빠의 해외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한다던 21살의 소녀가 20대 중반 끝자락에 서게 된 2019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느 집에서는 일상이겠지만, 큰 딸의 몽골 해외 봉사를 위한 60만 원이 부담스러웠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는 눈부신 변화인 셈이다. 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빠에게 있어서 삶의 원동력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밥 한 끼였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어쩌면 아빠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부모님을 위하면서도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는 것에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하며 아빠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위한 돈보다는, 가족을 위해 나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을 원했던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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