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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Nov 23. 2021

불면일기(不眠日記)

일곱번째 21.11.23

미세먼지와 눈이 차례로 지나간 나날동안

어두운 하늘에 기대어 오래 잠을 잤다.


자꾸 초조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가벼운 것을 보고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잘 잤다.


그러다 오늘 또 이렇게 잠 오지 않는 날을 맞이한다.

내일을 위한 계획을 위해서라면 얼른 자야할텐데




잠의 미스터리 하나. 몸은 피곤한데 왜 잠이 안올까?

가끔 새벽에 알바가 끝나는 날이면 금방 잠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신기하게도 거의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늦게 알바가 끝날수록 늦게 자는 것이다. 이건 대체 왜일까..? 알바를 하는 동안 놀지 못했던 것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심리인건가? 아무리 일이 고되었던 날에도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알바 후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니 대개 그 시간들은 무용하게 쓰인다. 그래서 차라리 잠이라도 잤으면 싶은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서서히 사회초년생이 되어가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퇴근 후에 그대로 뻗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세워본 가설은…


‘육체적 피곤보다 정신적 피곤에 의해 사람들은 잠에 빠진다.’

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나는 꽤 정신적으로 피곤하다고 느끼면서도 생각보다 피로하지 않은 것일수도.


몸보다 마음이 힘든 요즘, 가장 위로가 되는 생각이다.

그래도 아직 마음이 생각보다 지치지 않았구나, 싶다.


아르바이트는 내 재정의 여유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달려야 한다는 경각심을 언제나 일깨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알바가 벌써 다닌 지 이 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일단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목표는 다음 달~내년 초 안에 취직해서 그만두기. 취직을 하고나면 더 이상의 백수 생활은 안녕이지만, 그래서 그 전에 더 자유롭게 놀면서 준비하다 취직하고 싶기도 하지만, 여윳돈을 모아두어야 겠다는 생각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아무리 봐도 취직뿐…(다소 우울하구나)


아무튼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날에는 왠지 조금 더 열심히 살 힘을 내게 되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다짐하게 된다.


오랜 아르바이트 경험의 유일한 단점은 사람의 씀씀이를 도저히 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나처럼 꾸준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적은데, 다들 어떻게 사는 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용돈을 안받은지 오래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님이 보통 주시는 용돈으로 한 달동인 생활이 가능한가..? 신기한 것이다. 아무래도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것은 따로 돈을 모으기 힘들겠지…하지만 이렇게 매달 들어오는 돈에 익숙해져 씀씀이가 넓어질 걱정은 안해도 될 것이다.


요즘은 취직과 씀씀이, 이 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내가 오래 좋아했던 것들이 밀려나고 있다. 새로 시작한 드로잉을 하지 못한지 꽤 되었고, 보고 난 후 여운을 느낄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읽어야지 혹은 소장해야지 하는 감상을 느낀 지도 오래되었고, 유일하게 잘 하고 있는건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동안 안나오기 뿐이다.


요즘 나를 잠시나마 웃게 하는 건 거리의 풍경들이다.


가을인데 겨울이 왔다가 다시금 가을이 왔다가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다가 이윽고 겨울이 왔다.

지난 주말의 가을과

오늘의 겨울


그리고 오늘 알바 가는 길에 만난 구름

마치 거대한 산 같았던 멋진 구름이 평생 저렇게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상의 사이를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채운다.



사람들은 현재의 좌절과 초조를 어떻게 이겨낼까.


중학생 때 어둠속양초의 [막나가는 그들]이라는 인터넷소설을 정말 좋아했다. 주인공 이리나의 인생철학 ‘심신안락주의’라는 말을 좋아해서 블로그 이름으로도 하고, 그를 따라 내 인생철학으로도 삼았다.


저 하나의 단어가 내 삶과 성격을 전부 바꾼 것은 아니겠지만, 실제로 중학생 때 많이 바뀌었다고 듣기도 하고 스스로도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의 여유없음은 초등학생 이후로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이다. 그래서 이 낯섦에 자주 사로잡히는 요즘은 불면과 숙면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이 일기에만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이렇게 쓰고 나면 무거웠던 생각은 조금 가벼워지고, 아무렴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리나를 생각해서 오늘 하루 치 생각의 무게는 평소보다 훨씬 더 가벼워진 것 같기도.


인소를 쓴 작가님은 아시려나. 한 독자는 그 소설의 인물이 너무 좋아서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힘들 때 그를 떠올린다는 것을.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을 최고의 가치로!


저 문장을 되뇌이며, 오지 않는 잠을 내일을 위해 억지로 청해보기로 한다.

누군가 또 나처럼 잠 못 이루는 사람들도 저 말로 위안을 얻기를 바라며.



지금 제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요

https://soundcloud.app.goo.gl/scxffHg51Yok9xV87

처음 듣고 정말 좋아서 새벽마다 무한반복재생했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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