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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Dec 04. 2021

불면일기(不眠日記)

21.12.04 여덞번째

뱀파이어가 된 기분이다.


낮에는 축 늘어져 있다가 밤이 되면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해야지, 라는 마음 하나로 꼬물꼬물 그제야 제대로 된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새벽 두 시는 금세 찾아온다.

대충 오늘의 목표치를 해치우고 맞이한 새벽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어제오늘 한 생각들 : 얕은 생각/러브레터의 히로코



1. 그들에게(부제:나를 스쳐지나간 모든 인연들에게)


왜 남자친구 안사겨요?”

라는 말을 들으면 순간 상대방은 가벼운 스몰토크를 시도한 것임을 앎에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일정 기간 이상 나를 지켜본 사람들 중에서는 남친이 오랫동안 없는 나의 성정체성이나 사상을 떠보는 듯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 일을 겪다보니 대체로 저 질문은 나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시작점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아~걔가 좋아한다는 애가 쟤야?”

라는 말을 대학 첫 학과 술자리에서 들었다. 그 때 나는 내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과 엮여 ‘걔’로 지칭되었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사랑과 연애에 얼마나 관심이 지극한지… 나는 여중-여고에서는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내가 내 이름을 쉽게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고서는 꽤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 둘 다 서로를 잃지 않는 선에서 좋아하는 관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 라는 속담을 남녀관계에 비유해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열 번 찍어도 끌리지 않는 사람은 존재한다. 이십대 초반 때는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했고,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후로 쭉 그랬다. 내 주변 친구들도 다 비슷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한 발짝 나가면 이 사회가 연애를 안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상하게 본다는 걸 깨닫고는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보다는 미지근한 온도로 관계를 바라보고 싶은 나는 여전히 누구보다도 연애에서 멀리 서있다.


그래도 내게 진심을 꺼내보였던 그들에 대해서는 종종 생각한다. 사실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건 부러움의 감정이 크다. 어렸던 어느 날엔 관계를 부수고 떠나간 그들을 조금은 원망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했던 용기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그냥 넘겨버린 내 무심함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얕게 생각하는 것이 저의 복잡하지 않은, 평온한 마음을 위해서 필요했어요. 라고 변명을 해본다.


나는 내가 가진 관계의 온도와 거리를 상대방에게도 요구했던 것 같다. 가끔은 알아차린 상대의 마음을 모른 척 하기도 했다. 모른 척 하면서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을 대했다. 그 때는 정말 몰랐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은 그저 복잡하기 싫어서 외면했구나, 싶다.


그래서 이런 새벽에 타인에게 진심을 내보여 주었던 그들을 조금은 부러워하며 이런 나보다 훨씬 낫다고 반성을 해본다.



2. 히로코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 순간을 선택할까요? : 영화 <러브레터>



두 번째로 보는 러브레터


사건의 시작이 되는, 히로코가 이츠키의 중학교 앨범에서 찾아낸 주소를 옮겨 적는 장면. 너무 좋아서…찍어두었는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히로코가 다시 저 때로 돌아간다면, 앨범의 주소를 옮겨 적을까?’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상미를 좋아한다. 그 중 러브레터는 단연 최고다, 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제는 이상하게도 히로코한테 감정이입을 해서 보았더니 저 편지를 보낸 이후로 히로코의 표정만 살펴보게 되었다. 실종된 뒤 잊지 못했던 연인에게 같은 이름을 가진 첫사랑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그가 자신과 굉장히 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기분은…어떨까? 게다가 그 첫사랑은 연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자신이 그의 첫사랑이라는 걸 모른다면…


차라리 그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리워서 보낸 편지를 보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러브레터의 명장면인 히로코의 외침은… 예전보다 더 슬프고 아프게 와닿았다.


이츠키와 이츠키의 어린 시절의 서사와 아름다운 오타루는 정말 좋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생각을 하면서 보았다.


그리고 히로코의 곁을 맴도는 사람과 고모부 캐릭터가 별로라고 느껴져서 처음 봤을 때의 감상과는 사뭇 달라졌다.  결국 별점 한 개를 뺀 채 영화를 끄고 누워서 히로코가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행복과 새로운 사랑을 찾기를 기도했다.


*


오늘의 추천곡

러브레터OST

1. winter story

2. forgive me

3. small happiness

4. frozen summer

5. sweet rumors

6. letter of no return

7. gateway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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