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엔 맛있는 걸 먹기로 했건만.
연애 시절부터 우리에겐 공식이 하나 있었다. 월급 받는 날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로 지정한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월급날엔 참치회처럼 맛있는걸 먹기로 하자"라고 얘기했다. 말을 꺼내기 무섭게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그렇게 한 달에 한 두번은 꼬박꼬박 참치회를 즐기곤 했다. 참치회는 사실 우리 부부의 소울 푸드다. 음식점에 갔는데 뭔가 가격 대비 음식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면 우린 "이 돈이면 참치 먹을껄" 이라며 한참을 아쉬워하곤 했다.
근데 그 소울 푸드를 먹은 지가 언제더라.
두 달이 넘었다. 물론 두 달이면 '별로 안됬는데?' 생각할 수도. 하지만 두 달 전 먹은 참치회도 세 달쯤 만에 먹었는 걸? 우리 부부에겐 정말 정말 오랜만에 참치회를 먹었던 거라고!
결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부터 나는 남편에게 종종 얘기했다. "차 타고 근교로 나가서 데이트를 한 지가 너무 오래됬어" 어제는 침대에 누워 또 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데이트 하러 좀 멀리 나가고 싶다고 한 지가 언젠데..." 라며 툴툴거리자 남편은 우리가 너무 바쁘지 않았냐고 나를 도닥였다. 사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너무 바빴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주말마다 집에 들일 가구를 보러 다녀야했고 하루는 웨딩 촬영, 또 하루는 웨딩드레스 셀렉, 그럼 그 다음 주는 예단을 드리러 가야했다. 결혼 준비라는 건 끝이 없었다.
그래! 결혼 준비는 그렇다치자.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도 도대체 주말마다 왜이리 바쁜건데?
하늘에서 집안일이 내려와.
나는 결혼 전 우리 엄마 아빠의 철부지 막내딸로 30년을 자라왔다. 엄마의 부모님, 그러니까 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엄마는 우리 딸들 옆에서 오래 살면서 뒤치닥거리도 해주고 우리 딸들 애기 낳는 것까지 다 볼거야" 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침대 이불을 엉망으로 해두고 집을 나서도 엄마는 말없이 매일 이부자리를 단정히 해주셨다.
그래서 였을까. 집안일이란 게 왜 이리 할 게 많은 건지 결혼 후에야 깨달았다. 사실 설거지, 집안 청소,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까지 집안일의 8할은 남편이 주로 맡아서 하는데도 말이다. 전업 주부들은 정말 월에 300만원은 월급으로 받아야할 것 같다.그마저 적은 것 같기도.
오랜만에 하루종일 집에 있는 주말이면, 느즈막히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점심을 차려 같이 먹고 난 후 아까 돌린 건조기에서 빨랫감들을 꺼내다가 정리한다.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고 괜찮으면 환기도 한 번 해주고, 이왕 주말이니까 물걸레질도 하고.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다.
철부지 막내 딸은 효녀 노릇하느라 가랑이 찢어져요.
어렸을 땐 몰랐는데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퍽이나 독특한 편이었다. 아빠는 항상 '너의 인생의 너의 것'이라고 가르치셨고 언니와 나는 어릴 적 부터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해왔다. 내가 어느 대학에 어느 학과를 갈 예정인지에 대해 첫 등록금을 낼 때가 되서야 부모님께 알려드렸을 정도랄까. 무관심이라는 표현보다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렇게 30년을 커왔는데 갑자기 나에게 또 다른 부모님이 생겼다. 그것도 왠지모르게 굉장히 잘보이고 싶은 욕심이 나는 부모님. 심지어 우리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진.
결혼 전에도 밤 열 시가 넘어도 전혀 전화가 오지 않는 우리 집과는 다르게, 남편은 하루에 한 번쯤은 부모님과 통화를 하곤했다. 그래서인지 시부모님은 내게 한 번도 자주 보고싶다 하시진 않았지만 왠지 내가 그래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결혼 전에는 특별히 챙기지도 않았던 가족 행사를 챙기려니 안그래도 다리가 짧았는데 가랑이가 찢어질 노릇이다.
1년에는 도대체 몇 번의 가족 행사 혹은 모임이 있는 걸까.
부모님 생신 총 합 4회, 추석, 설날, 어버이날, 부모님 결혼 기념일(이건 일단 애매하지만) 2회, 우리 조카 돌잔치 1회까지. 뭔가 공식적인 행사가 열 번정도. 여기다 부모님이 은퇴를 하시거나 승진을 하시면 기념 파티도 하고 그러겠지. 한 달에 한번 꼴로 행사가 있다. 왜 바쁜 가 했는데 이유가 다 있다.
사실 그렇다고해서 무슨 추석 증후군이 생길만큼 가족 행사가 가기 싫은 것도 아니다. 실상 가면은 거의 신선놀음처럼 쉬다온달까. 지난 번에 다녀온 시외할머니 댁에서는 늘어져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아침 식사로 변산반도산 꽃게장을 실컷 먹고 남편과 안방에서 4시간 동안 낮잠을 잤어도 그 누구도 나에게 눈치를 주지도, 뭐라하시지도 않았다. 저녁도 우리 새애기 좋아하는 회먹자셔서 그마저도 외식. 아주 며느리팔자가 상팔자다.
좋다 싫다가 아니라 결혼을 하면 바빠진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바쁘다라는 의미는 부부가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생각보다 빠듯하다는 이야기다.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 중 종종 나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더이상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했을지라도 결혼하면 바빠진다는 것을 미리 알고 결혼하길 바라는 바이다. 친한 친구들 중 결혼은 내가 처음이니까 친구들한테 꼭 이야기해줘야지.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바쁘다고해서 그냥 그 핑계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두 사람이 눈맞추고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노력하길 바란다는 것.
이건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남편에게 하고픈 말이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단 둘이 벚꽃 구경을 가기로 했다. 작년에는 이 맘때쯤 광양으로 매화꽃을 보러 다녀왔었는데 올 해는 섬진강으로 벚꽃을 보러 가볼까 한다.
올해도 작년처럼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함께 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