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에게 둘째란?
몸이 너무 피곤하고 자도 자도 졸렸다.
별거 아닌 일에도 감정이 요동쳤고, 밥을 먹기 싫다는 아이의 투정에 무서운 엄마가 되었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고 장난치지 말고 밥을 다 먹으라고 다그쳤다. 어린 아들은 엄마의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했고, 금세 아이의 눈에는 차마 흐르지 못하고 맷힌 눈물방울만 그렁였다. 애써 아이의 눈을 외면한 채 들어온 화장실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두 줄이었다.
선명해도 너무 선명한 두 줄이었다.
가끔 맘 카페에는 아직 선명하지 않은 두줄을 가지고 선배 아기 엄마들이 매직아이 모드로 맞다 아니다 하며 썰전을 벌이기도 하는데, 막상 나의 것을 마주하니 감정이 이상하다. 첫째 때도 갑자기 찾아온 이 두줄에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마주하지 못했는데, 둘째 때도 여전히 이 감정은 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시국(코로나 19)에도 무사히 찾아와 준 아이에게 감사하면서도 앞으로 맞이할 무서운 무게감에 당혹스럽기도 한 이 기분... 나중에 아이에게 들키면 안 되겠다.
그렇게 둘째를 임신했다.
기쁘면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먼저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정엄마는 평소 회의 시간이나 미팅 시간에만 귀신같이 골라서 전화하시더니 마침 이럴 때는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백 프로 엄마와 같이 계실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는 역시 내 전화를 바로 받는다. 운동 중이시라는 아빠는 엄마가 지금 열심히 운동 중이라서 전화를 못 받고 있다며 전화를 받으신다. 소식을 전하니 축하한다는 말을 하신다. 역시, 엄마가 전화를 받았어야 했는데, 엄마만큼의 오버스러움(?!)이 없다. 평소 시댁 부모님보다도 둘째에 대한 압박을 대놓고 주시던 아빠의 축하는 심지어 평소 아이 임신 소식을 많이 들어 무뎌진 사람의 축하와 같이 무미건조하다. 나의 이 뒤숭숭한 감정을 시원하게 정의해줄 수 있는 엄마가 필요하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꼭 이 소식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한창 회의 중일 남편에게 보낸 카톡은 아직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그다음은 친정언니다. 엄마에게 받지 못한 격한 축하는 이미 연년생을 초등학교에 보낸 육아 베테랑(?!) 언니에게 받아야겠다. 언니에게 전화하니 벌써 소식을 알고 있다. 분명 나를 빼고 소통하는 가족 카톡방이 따로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언니는 역시 엄마만큼은 아니어도 격한 축하를 전한다. 그리곤 바로 현실적인 조언이 쏟아진다. 둘이 되면 얼마나 생활비가 많이 들며, 첫째는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이며, 이럴 때 엄마는 어떻게 첫째 아이의 감정을 어루만져줘야 하는지 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째에게 소홀하면 안 되며, 첫째 아이 안 볼 때 둘째에게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지 등등 역시 맘 카페 인플루언서인 언니는 셀 수 없는 육아팁들을 아웃사이더처럼 뱉어낸다. 첫째 낳았을 때, 다 전수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둘째는 첫째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또다시 새로운 시작인가 보다.
이렇게 언니와 축하와 조언이 섞인 전화를 한 시간 가령하고 나니 확실해졌다.
아, 나 지금 매우 기쁘구나.
글
나무늘보(스타트업에 종사하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첫째를 출산하고 100일 만에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5년이 지난 지금, 둘째를 가졌습니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워킹맘으로서 둘째를 임신한 임산부로서 또 다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엄마들에게 혹은 미래의 엄마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자 글을 씁니다.
1. 둘째를 임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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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둘째 아이, 풀지 않은 숙제와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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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비맘 모임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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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금, 제 인생 조정이 온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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