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탕에 보랏빛 제목, 귀여운 캐리어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제목은 '직업 여행자의 밥벌이 다반사'.
하고 많은 여행 중에 직업 여행이라니? 낯선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유진아, '직업 여행자의 밥벌이 다반사', 지음지기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설립한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한 책이다. 출판사의 이름은 '지음지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뜻이 맞다. 작가 자신에게 책이 그러했든, 독자들에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좋은 책을 선물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독자를 만나고 싶어 선택한 이름이라 한다.
유진아 브런치에서 발췌.
책을 펼쳐 보자. 표지의 귀여운 캐리어 스티커가 한 장 들어있었다. 너무 귀여워 잘 보이는 것에 붙여두고도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 스티커는 책갈피로 사용해도 좋다.
귀여워.. 표지의 캐리어를 미니 스티커로 만들어 동봉했다.
목차는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는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으로 이름지었다. 뚜벅뚜벅 여행에 나서는 기분이 드는 목차다. 한 걸음마다 7~8편의 사연이 실렸다. 어떤 전공을 선택했고, 전공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양한 직업 여행을 3~5페이지의 짤막한 사연으로 정리했다. 두께는 두껍지 않았다. 작가 특유의 친근한 문체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했고. 후루룩 국수 면발 넘기듯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국수 먹듯 넘기다 보니 어느덧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특히 공감가는 몇몇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한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가볍게.
039. 신부님도 2주 만에 도망쳤다던 위탁형 대안학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어쩌면 못할 일이라) 너무 재밌게 읽었다. 독서의 가장 큰 효용은 간접 경험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일반 학교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학생들과, 무덤덤한 교사들의 반응은 이 에피소드를 읽는 내내 입을 떡 벌리게 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평생을 인고의 마음으로 살아오신 신부님도 2주 만에 학교를 떠났겠는가. 절대 직접 경험하고 싶진 않지만 엿보기엔 딱이었다. 너무 재밌게 읽었던 에피소드.
057. 입사 후 2개월 만에 회사를 폐업시키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오로지 한 우물만을 파온 나로서는 이런 샛길 스토리가 참 재밌다. 사범 대학 출신의 작가가 출판 회사에 입사해 어려움에 봉착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너무 착한 사장님과 진심으로 조언을 건넨 작가의 마음도 잘 느낄 수 있었고. 아직 세상은 살 만하구나, 하지만 역시 세상은 만만치 않구나, 느낄 수 있었던 에피소드.
111.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잡식성 강사.
나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고 싶다. 무엇을 강의하고 싶다기보다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강단에 서 보고 싶은 것 같다. 그러려면 이것저것 커리어도 만들고, 여기저기 지원도 해봐야 하는데 나는 너무 정체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여러 경험들이 모여 작가는 결국 강단에 서게 됐다. 부러웠고, 동기부여가 되었다. 좋은 자극이 되었던 에피소드.
000. 어떤 날의 일기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작가의 일기는 아마 본인의 필체 그대로 담아낸 듯 앙증맞다. 그리고 그날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몇 개의 에피소드 사이에 일기를 담은 구성은 어떻게 생각한 걸까. 에피소드와 함께 어울려 그맘때의 상황과 감정이 더 잘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꼭 비밀을 엿보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숨가삐 읽어내렸다.
어떤 날의 일기
가볍게 읽었으나, 책이 주는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숱한 회의의 순간을 겪는 중인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좋은 책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직이나 퇴직, 그리고 아예 카테고리가 다른 직종으로의 전업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적지 않아서, 경제적인 이유로, 주변의 기대에 어긋날까 봐, 우리는 쉽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떠나게 될 것을 안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 고민의 세월을 보내고 결정한 길임에도 우리는 종종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한숨짓기도 한다. 신중하게 선택했다고 해서, 오랜 세월 꿈꿔왔다고 해서 꼭,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도 이 여행에 동참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때가 온다면 당황하거나 주눅들지 않고, 정말 여행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직업 여행에 나서보고 싶다. 혼란스럽고 힘겨운 직업 세상에서 누군가 홀가분한 일탈을 꿈꾸고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P.S. 여러 모로 부러워지는 책이었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은 자기 책을 내는 것이 꿈일 것이다. 용기 있는 도전으로 출판사를 설립하고, 자신이 만든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을 낸다는 것. 너무나도 멋지고 황홀한 경험이 아닐까. 너무 부럽고, 꼭 잘돼서 좋은 선례로 남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