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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Aug 01. 2020

일인칭 관찰자 되어 보기

_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 관하여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나다운 것,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 치이며 그냥저냥 살아갈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죽을 때, 나답게 사는 것,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탐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이들도 있다.

바로 소설가(小說家)다.






(1) 끝없는 고뇌와 소외. 나의 마지막까지 내가 결정하는 일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는 총 네 번의 자살 미수,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자살 기도 끝에 자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자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단순히 심신미약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1938년 결혼 이후 꽤나 안정된 삶을 경험해 본 그가, 마침내 자살로 그 생을 마무리한 것은 그저 단순한 심신미약의 탓은 아닐 것이다. ‘인간실격’은 고뇌로 가득했던 그의 삶을 자전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소설을 통해 과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갈 삶의 방향을 모색하려 하였을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추락하는 것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추락하는 것이다.
… 인간은 추락할 수 있는 데까지 추락해야 한다.
떨어질 데까지 떨어져서 자기 자신을 찾고 구원해야 한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민음사)' 작품해설 中




다자이 오사무의 치열한 자아성찰과 자기비판 정신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소설 연재 도중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 사실이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닐는지.



비슷한 느낌의 작품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들 수 있겠다. _물론 두 소설가의 삶은 완전히 달랐으나…_ 어쩐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뫼르소’는 친구(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는 왠지 자신의 삶으로부터 자신이 소외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적어도 아랍인을 총으로 쏠 때는 뫼르소, 본인의 본능이 반응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카드 게임을 할 때도, 레몽과 단둘이 여관방에서 술을 마실 때도 대부분 지루했지만, 그것은 뫼르소 본인이 원해서 한 것이었다. 진실을 왜곡해 가며 자신을 구하려는 변호사, 신앙으로 그를 구원하려는 사제, (공통의) 윤리적 잣대를 들이미는 판사와 검사의 말이 어쩐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뫼르소. 마침내 그는 온몸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쩌면 살 수 있었음에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답게 살다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2) 본연의 생명력과 열정. 본능(本能)을 거스르지 않는 삶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굉장한 에너지의 소유자다. 그가 가진 에너지의 근원은 지성(知性)도, 부(富)도, 권력과 명예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본능(本能)’이다. 조르바는 배가 고프면 먹고, 취하고 싶으면 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신다. 여자와 자고 싶으면 여자를 유혹하고, 떠나고 싶으면 떠난다. 그는 어디에 얽매이는 법이 없고, 직관과 본능에 의지해 눈앞의 문제를 해치우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이런 조르바의 삶에는 미래가 없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건 사실이다. 실제로 소설 속 조르바는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의 삶에는 ‘현재’가 있다. 바로 지금, 그의 삶에는 지금 이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는 소설 속 누구보다도 ‘사람답’고, ‘나답’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왕성한 에너지로 _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_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고래고래’라는 낱말을 사용한 김에 천명관의 ‘고래’라는 소설도 잠시 짚고 넘어가자. 제목의 ‘고래’는 일반적으로 ‘순수’와 '이상', ‘역동(力動)’ 등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고래의 이미지는 마치, 조르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춘희’와 '금복'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통해 치열하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한 생명력과 생(生)에의 본능을 형상화한다. 모든 것을 잃었고, 앞으로의 삶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춘희는 본연의 생명력과 생을 향한 의지로 ‘나다움’을 지켜내고, 마침내 시련을 극복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원초적 본능. 조르바와 춘희의 삶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나다움의 원천으로 발견할 수 있다.






(3) 맹목(盲目)의 맹점(盲點). 잘못된 방향성과 선동. 비판적 안목의 부재

열정으로 가득한 삶이라 해도, 그 방향과 목적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것은 결코 나다운 삶으로 이어질 수 없다. 이러한 삶의 폐단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 있다. 바로 영국 소설의 거장,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그리고 ‘1984’이다.



기본적으로 두 작품은 비슷한 결의 소설이다. 두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독재’다. ‘동물농장’에는 전무후무한 혁명가 동지 ‘나폴레옹’이, ‘1984’에서는 위대한 전쟁영웅 ‘빅브라더’가 인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독재자로 등장한다.



‘동물농장’의 ‘복서’는 근육질의 건강한 말(馬)로, 인간과의 전투에 늘 앞장서고, 모든 동물들의 염원인 ‘풍차’ 건설의 최대 공헌자이다. 그러나 그는 말발굽이 다 닳아 빠질 때까지 농장을 위해_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폴레옹과 돼지들을 위해_ 헌신하지만 아무런 보상도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삶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죽어간다. 농장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그에게는 삶의 목표이자,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 ‘전체’는 있었으나, 자기 자신, ‘나’는 없었다. 이런 삶을 과연 ‘나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반복되는 일과와 승전보와 경제성장으로만 가득 채워진 뉴스, 맹목적으로 당에 열광하는 군중 등에 권태와 의구심을 느끼고, 비밀일기를 쓰며 반역을 상상한다. 줄리아와 만나 자유와 본능에 충실한 삶을 경험하지만 당에서 심어놓은 밀정, 오브라이언의 계략에 넘어간 그들은 심한 고문을 당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까지 배신하는 지경에 이른다. 심문 이후 두 사람은 당의 질서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고 이전에 없이 의욕적이고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이고,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바람직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권의 부재. 자유의지가 없는 삶. 이것을 과연 나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결과가_양적으로는_옳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나’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을 과연 ‘나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복서’와 ‘윈스턴’의 삶에는 국가와 ‘모두’는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 즉 ‘나’는 없었다. ‘나’ 없이 나다울 수 있을까. 나 없이 나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렵다. 어렵다는 핑계로 자꾸 혼자 고민해 볼 엄두는 못 내고, 남의 소설만 들춰보고, 남의 생각만 내 생각인 양 늘어놓는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답을 찾는 날, 나도 그럴듯한 소설 한 편 쓸 수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모습일까. 죽으려고 안달이 난 심신미약의 박약아(薄弱兒)일까. 날것 그대로의 야만인(野蠻人)일까. 그것도 아니면 거대한 흐름에 삶을 맡기고 스스로 선택하기를 포기해 버린 소시민(小市民)일까. 어떤 모습이 됐든,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제야 비로소 온전한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그제야 진정한 나로서 그들과 마음을 터놓은 진솔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날까지 다시 한 번, … 그러기 위해서는 난 어떤 사람인지, 나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훌륭한 일인칭 관찰자 되기.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자, 맘먹은 김에 오늘부터 시작. 꿋꿋하게 시작. 일인칭 관찰자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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