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국 엄마달팽이 Feb 17. 2021

[12일 미션] 산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함께하는 문우 칭찬하기 ] 20일간 글쓰기 모임


미션:

"2주 동안 글을 쓰면서 혹시 떠오른 한 사람의 얼굴이 있나요? 그 문우의 얼굴을 생각하며 글을 한 편 써봅니다. 그 사람의 어떤 면이 좋았나요? 어떤 면 때문에 호감을 느끼게 됐나요?"

"누군가를 칭찬하면 칭찬을 받은 당사자와 칭찬을 건넨 사람, 두 사람의 자존감이 동시에 상승한다고 합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이석현 글-




큰 일이다.

나는, 칭찬의 내용은 기억나는데, 그 글을 쓴 이가 누구인지, 이름과 매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분명 모든 글쓴이들의 이름은 뜻이 있는 단어들이라, 그 단어들이 얼굴일 것인데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얼굴을 한 이가 적은 답글이었는지.


신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참 비슷한 단어들을 쓰는 이들이 많구나 느꼈다. 처음엔 신기했고 다음엔 마음이 놓였으며 이제는 궁금해진다. 어느 단어들이 또다시 우리의 글방에 선을 보일 것인가.


비슷한 단어를 쓰는 사람들. 비슷한 단어를 품고 있는 사람들. 단어에 드러내 주는 비슷한 마음들. 늘 다르고 싶어 하면서도 언제나 시작은 비슷함에서 오는 편안함인가 한다. 생후 1년 차 인간의 지상 최대, 최고, 유일의 목적은 안전 확보인 뇌신경학 내용이 또 한 번 떠오른다. 역시, 언제나 안전이 우선이구나. 안전이 장착되어야 자유도, 즐거움도, 다름도 추구할 수 있는 것. 한 팔 벌린 책상 위 공간에서, 손 닿지도 못하는 온라인 모임의 사람들과, 주거니 받거니 단어들을 찍어내며 그렇게 안전과 안락과 안정을 얻어가는가 보다.





첫, 첫, 첫.

첫날, 첫 글, 첫 답글들. 모두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벼운 한국인 조르바가 되고 싶다는 나의 단어에 모두들 조르바를 되돌려 적어 주었다. 산이 떠올랐다. 산에 오르던 그때가 생각났다.


산에 올라 메아리를 찾았었다. 홀로 오르던 산에서 메아리를 친 이유, 어려서는 신기해서였다. 조금 커서는 화가 나서였고 이후에는 듣기 위해서였다.


조금 커서 찾은 산. 메아리. 언제나 내 목소리 크게 한 바퀴 휘돌려선 되돌려 보내기만. 늘 내가 물은 단어 그대로였다. 화가 났다. 답도 없이 내 말 흉내만 내는 것 같아 얄밉고, 무심하고, 무정하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화가 났지만 달리 갈 곳은 없었다. 나무들을 만나려면 무심함의 끝판왕이래도 올라야 했다. 나도 지지 않았다. 지지 않고 늘 산에 올라 메아리를 치고, 화를 내고, 산을 닦달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지고 싶어서, 아니 이기지 못할 싸움을 일부러 고른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아야 끝없이 화를 낼 수 있어서였는지도.


산. 언제나 나의 말 그대로를 돌려주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알아차렸다. 날카롭게 내지른 나의 찢어진 목소리는 던질 때완 다른 소리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대체, 왜. 왜. 왜!"

"왜... 왜... 왜..."


산은 언제나 들어주고 있었다. 내가 던진 단어는 바꾸지도, 보태지도 않고 그저 한 바퀴, 자기 몸 전체로 나의 소리를 안아 가시와 거부와 질문 투성인 모서리는 죄다 깎아서 부드럽게 되돌려 주었다. 네 말이 맞다고, 그 말이 맞다고. 그 말 아닌 다른 건 다 진짜가 아니라고. 다른 건 네 것이 아니니 버려도 된다고.


그리곤 더 자주 올랐던 산. 더 이상 메아리가 필요 없을 때까지 올랐다. 나를 들으러. 산을 들으러.





20대. 나는 산에게서 듣는 법을 배웠다. 소리치는 법을 배웠다. 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40대.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쓰는 모든 분들을 통해 또다시 듣는 법을 배운다. 말하는 법을 배운다. 연결되는 법을 배운다. 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인연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11일 미션] 나의 부캐는? 호흡 엔지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