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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Feb 25. 2021

[17일 미션] 내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잃어버린다는 것, 잊어버린다는 것, 기억하지 못 한다는 것

미션:

(전략)

"여러분만의 장애물, 그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 단단한 각오를 만들어봐요. 저도 해내고 있으니 여러분도 하실 수 있어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세요."


-공대생의 심야서재, 이석현 글-




[아이와의 추억을 담은 사진과, 그 날들에 대한 나의 기록을 날려버렸다]


미션을 받은 날, 때마침 내 마음의 장애물이 떡하니 나타나주었다. 요것 한 번 넘어보란듯이 때맞춰 딱.


오랜만에 숨 멎는 경험을 했다. 아이와 걸었던 동네 숲길 산책을 기록한 글이 한 10개 넘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모든 글이 삭제되었다. 심장이 쿵쾅대고 숨이 멈추는 그런 흔치 않은 경험. 써먹을 기술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 날이다. 눈을 감고 쿵쾅대는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 끝부터 발끝으로 호흡을 깊이 내 보냈다. 손가락 10개를 접는 동안 다행히 호흡은 재개되었다.


비록 열 몇 편의 기록이어서 이 정도로 끝난 것일까, 만약 2년 3년의 기록이었으면 멘탈 붕괴, 응급구조차에 실려갔을까? 내 멘탈이 이정도로만 버텨준 것은 그나마 사진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저 버려질 건 다시 적는동안 쓰여질 앞으로의 시간들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만한 일에 멘탈까지 운운하느냐고? 그것은 메모와 기록에 대한 나의 집착과 애착때문이다.




20대부터 늘 적어댔다. 아니 10대부터라 해야하나? 마주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적고, 학교 과제며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아이디어들을 늘 적어댔다. 자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적기도 하고 걷다가 멈추어 적기도 하고, 운전하다 멈추어 적기도 했다. 다시 보기 위해 적는 것들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늘 그 순간의 나란 사람이 하는 생각과 감정을 꺼내놓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그렇게 기록해두면서 나의 지금을 열어 확인하는 뭐 그런 모양새로.


어딘가에 꺼내두지 않고는 내 안에 가둬두기 어려운 때에 적기도 했고, 너무도 기억하고 싶은 기쁨과 슬픔을 적어두기도 했다. 언젠가 나중에, 나의 지난 날을 추억하며 숨겨둔 보물처럼 꺼내보려고도 했었다. 나의 감정의 존재를 그렇게 사랑했었던걸까? 감정을 꺼내어 놓는 것도 목적이고 그 감정을 박제하듯 간직하고도 싶어했다.  그런 나라서 멘탈이 붕괴된거다. 카테고리의 글들을 날리자 마자 든 느낌은 고통이었다. 아이와의 산책들, 그날에 살아있던 그때만의 생생한 기분들을 잃어버렸다는 고통. 상실감.





[괴로움의 실체. 존재함의 실체]


나는 오늘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한다고 느꼈다. 내가 자주 마주하는 이 상실감의 정체를 제대로 한 번은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대체 무엇에 대해 이리도 실망하고 괴로워하는가. 나를 앉혀놓고 의식의 흐름대로 난장 청문회에 들어간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그때의 경험들인가 아니면 그때의 기록들인가. 그 때가 사라진건가? 날라간 것은 그 때에 대한 나의 생각과 기억들 뿐이다. 아니 그것들도 없어진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도 그때에 존재했고, 그 때의 생각과 감정은 그때의 내 몸에 남아 지금의 나의 행동과 마음 모양새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엇이 사라졌다 이리도 흔들리는 것인가. 나의 생각과 감정?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데? 어디에 있는데? 그때에 적은 그 내용들을 지금 기억이나하면서 그렇게 무엇을 ‘잃어버렸다’ 애타게 찾는건가?


나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괴로움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정확히 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이미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라지고 말고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 이미 사라지고 흔적도 없을지 모르는 그 생각이란 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에서 시작된 괴로움. 있는지도 몰랐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에야 절망하는 나이면서. 나의 생에서 진짜로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인가 말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치유받는다]


진짜이건 아니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은 아직도 내겐 넘어야 할 산이다. 비슷한 고통을 알 것 같은 글쓰기 모임의 문우님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역시, 비슷한 감정을 이해해주는 이들의 마음은 늘 파도처럼 달려와 싹 가져가버린다. 잔거품만 남기고. 공감이란 이런 것이지, 또 한번 체험했다. 그리곤, 아이와의 사진을 날려버렸다는 문우님의 나눔말에 이렇게 답하는 나를 또 발견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아이의 사진이 날라간 건... 그냥 날아가도 제발 내게 없어졌다 알리지만 말길 바랍니다. 생각도 하기 싫어요 그건 정말.”


나의 대답에서 시간이 멈췄다.


'내가 알지만 못하면, 인식하지만 못하면 될 일 이었던 건가 정말? 내가 갖고자 열망해야 하는 것은 기억상실능력인건가? 기억하려고 적어대면서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기억하지 못함이었던건가?'


마인드풀 삶의 자세 중 Let it come/Let it be/ Let it go 가 떠오르는 시점이다.


오는 것은 오도록

가는 것은 가도록

그대로 두라

그대로 그대로




때마침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미 한 층 진정된 마음이었지만 한 때의 멘붕을 전했다. 나는 왜 이렇게 기억하지도 못할 기록들이 사라지는 것에 상심이 큰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남자, 이미 진정된 마음일 땐 올타쿠나 더 보태지 않고 유유히 걸어나가는 사람인데, 나의 더 깊은 진정을 목표로 삼았나보다.


“지난 해 동안, 니가 글로 저장한 파일이나 종이쪽지, 음성 기록 파일이 사라질 때 니가 보인 반응을 보면서 느낀건데 말이야, 너는 니 글들과 기록들이 사라지는 것에 괴로울 수 밖에 없어. 당연한거야. 너 아주 어릴 때 사진이랑 기록, 거의 다 잃어버렸잖아. 그리고 그 사진 속 사람들도 다들 떠나버렸고. 그래서 넌 네 기록들을 놓지 못하는거 같아. 네 과거의 기록이 너무 적게 남아서 기록이란 것들이 너무 소중한거지.”


남편의 그 말에 눈물이 울컥했다. 그런 새로운 분석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랬구나. 나는 그랬던건지도 모르겠구나...’


한 사람의 나를 향한 관심과 나도 몰랐던 새로운 해석이 나의 마음과 행동을 가라앉혀주었다. 이런건 진짜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은것 같다. 누군가의 이해와, 누군가의 관심과, 누군가의 새로운 발견이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진실을 넘어서는 진심. 나는 오늘 실수의 클릭으로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중일까. 많은 사람들이 나의 마음으로 닿고 닿는다.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의 경계. 존재와 해석의 거리]


존재한다는 것.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사라지는가. 우리의 선을 넘는 의미 부여와 넘치는 애착과 집착. 있고 없음의 진실과 진심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의 마음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의 산을 넘을 생각은 이렇게 결론지어졌다.



지나간 모든 것들은 결국 ‘나’로 남아있다.

지금의 나, 내가 바로 그 모든 것들의 기록이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부드럽게 다듬어진 나의 영혼과 성격, 슬픈 날들을 보내며 느낀 그 감정들이 일군 내 마음밭, 열심히 무언가를 이루려 노력하는 동안 들여온 힘. 그 모든 것의 기록이 바로 지금의 나다. 지금의 나는 또 내일의 내가 될 것이다. 지금 거쳐가는 모든 경험은 내 안에 그대로 담겨질 것이다.  내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그 모든 경험에 대한 반응의 흔적이며 기록이다. 그러니 거쳐간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이 사라져간다 슬퍼하지 말자. 사라진 게 아니다. 내 몸 어딘가에 잘 담겨져 나란 존재의 행보로 여실없이 다 드러나고 있다.



내가 곧 그 시간들의 결과다.

내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들도, 그것들도 모두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잊는다는 것, 그것이 상실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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