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음파 사진을 통해 봤던 그 작은 '점'이었던 아이들이 해를 넘길수록 커가고 변해가고 기어이 사람 모양이 되어가는 것에 신기함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끼곤 한다. 때문에 함께 생활하며 잔소리를 하는 엄마보다는 아주 가끔 만나 용돈이나 선물을 주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나를 아이들은 좋아라 한다.
지난주 모임은 남편 친구들과의 가족모임이었다.
유명 맛집이라는 한정식집 온돌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이언맨 모자를 쓰고 잡지 화보처럼 귀엽게 서있는 ○○와 제일 먼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거의 4개월 만에 보는 ○○가 너무 반가워 늘 하던 대로 무릎을 굽히고 앉아 두 팔을 한껏 벌리고 말했다.
“○○야, 아줌마한테 와”
달려오는 아이를 안고 일어서는데, 이럴 때면 늘 듣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온다.
“아줌마가 뭐야? 이모라고 하라니까”
반가운 웃음과 함께 내게 눈을 흘기며 다가오는 ○○엄마는 말한다.
“○○야, 이모야 이모. 알지? 저번에 아이스크림 같이 먹은 이모”
이런 류의 일들은 모임 때마다 벌어지곤 한다.
스스로를 아줌마라 칭하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으로 환심을 사는 나는 친구들에게 늘 같은 핀잔을 듣는다.
“얘는 아줌마가 뭐니, 아줌마가. 이모라고 하라니까.”
때마침 주차를 끝내고 온 남편이 방으로 들어서자 ○○엄마는 말한다.
“○○야, 삼촌도 오셨네. 배꼽인사. 삼촌 안녕하세요?”
친구와 후배의 아이들에게, 남편 친구들의 아이들에게도 난 늘 이모가 된다.
다섯 가족이 모이든 열 가족이 모이든, 여자는 모두 이모고 남자는 모두 삼촌이다.
“그런데 늘 생각하는 거지만 집집마다 삼촌이랑 이모랑 사는 거 좀 이상하지 않나? 삼촌은 숙모랑 살고 이모는 이모부랑 사는 게 맞는데 말이야 “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면 친구들은 깔깔 웃기만 하지, 호칭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난 여전히 이모로,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아줌마란 호칭에 반감을 갖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아줌마는 벌써 20년도 더 전부터 업신여겨지고 하대하는, 형편없이 폄하된 호칭으로 통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우리는 홍길동의 후예도 아닌데 스스로가 아줌마이면서 스스로를 아줌마라 부르지 못한다. 그게 온당한 걸까? 어쩌면 아줌마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라도 만들어야 할까? 그 단어가 생긴다면 그 새로운 단어는 누구로부터도 폄하되지 않고 온전히 친구들의 마음에도 흡족하게 사용될 수 있을까.
요즘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꽤 많은 커뮤니티에서 건강가정 시행계획을 추진한다면서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에 대해 설문을 하고 논의를 한다고 한다. 또 서울시교육청에선 선생님을 쌤이라고 부르는 문제로 논란이 됐다고도. 물론 나 역시 그들의 의도를, 논란의 의미를 알고 있다.
호칭은 단순히 대상을 '부르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호칭은 때때로 대상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환경을 규정지으며, 내가 대상에게 갖는 존중의 무게와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대상의 정체성과 입지를, 그 환경의 서열과 계급의 성격까지도 말이다. 이건 비단 남녀만의, 가족만의,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며, 단순한 해결도 아마 어려울 듯하다. ‘차별’ 없는 건강가족 시행계획을 추진한다는 그 신문기사에서조차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이란 단어(내가 알고 있는 성만도 남녀 외에 7개가 되는 지금 세상에)를 쓰고 있는 것만 봐도 말이다.
그런데 억지로 바꿔 부르는 호칭이 정말 본질을 바꾸게 될까.
삼 형제 중 막내인 남편과 결혼하자 내겐 위로 두 분의 형님이 계셨다. 나는 그들을 큰 형님, 작은 형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큰 형님, 작은 형님 오셨네요'와 같이 입에 붙지 않는 ‘형님 형님’ 소리를 하다가,
“아니 조폭도 아닌데 말끝마다 큰 형님 작은 형님, 꼭 제가 조폭이 된 것 같아요”
라고 했더니 온 집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때는 조폭 영화가 성행하고 개그프로에서도 조폭 유머가 유행하던 때여서 나는 그런 우스개 소리를 따라 하기도 했다. 조폭 두목이 막내에게 전화번호를 묻자 막내가 말한다.
“예, 행님, 0입니다 행님, 1입니다 행님, 다시 1입니다 행님. 그리고 7이고요 행님...”
이런 식의 유머였다. 두 분 형님들과 또 한바탕 웃고 나니 큰 형님이 말하길,
"결혼 초기부터 시동생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게 입에 붙었나 봐. 결혼들을 한 지가 한참인데 서방님 소리가 안 나오네. 어머님께 혼나기 전에 고쳐야 되는데" 한다.
아니 내 서방도 아닌데 서방님은 또 웬 말인가 말이다.
나는 아이언맨 모자를 쓴 ○○이한테 아줌마로 불리는 것에 전혀 반감이 없다. 우리가 시댁을 시가로 부르든 도련님을 서방님으로 부르든 간에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진짜 바뀌어야 할 것은 이제껏 미루기만 하느라 제대로 고민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한 우리의 사고가 아닐까.
도덕적 인간은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고민하는인간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도덕적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자. 부디 ○○이가 컸을 때는, 삼촌과 숙모, 이모와 이모부가 같이 살지 않고 집집마다 이모와 삼촌이 사는 세상을 설명할 필요 없도록,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